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아바 Jan 11. 2023

1-1. 비혼주의자의 결혼

<이상한 남편 관찰기> 프롤로그

제 결혼 소식, 당황스러우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2015년 초, 청첩장을 전달하는 순간마다 저렇게 시작하는 인사말을 건네야 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누구보다 당황스러운 사람은 정말 저였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혼자 살겠다는 말을 수시로 했어요. 40대에 들어선 제 친구들 대부분은 현재 미혼이고, 그중에서도 끝까지 혼자 남아 굳세게 살아갈 사람은 당연히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결혼이라니요. 제 입으로 말하는 것조차 민망해서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어쩌다 결혼은 했지만 금방 헤어질 줄 알았어요. 저 자신조차 스스로를 믿지 못했으니까요. 늘 헤어질 결심을 하고서 누군가를 사귀었고, 갈등이 생기면 곧바로 관계를 정리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온 저를 신뢰할 수 없었어요. 제가 지켜본 결혼이라고는 부모님의 것뿐인데, 그 결혼 역시 ‘남자 잘못 만나 여자가 평생 고생한’ 대표적인 경우였고, 주변의 기혼 여성들은 늘 시댁이나 남편 흉을 보면서 “너는 결혼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되풀이했어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직접 보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결혼 생활의 예를요.


그런데 세상에. ‘이런 게 결혼 생활이라고 왜? 아무도 말 안 해준 거야!’ 따지고 싶은 일들이 하나둘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은 돌변하지 않았고, 시댁 식구들은 제 원가족보다 말이 잘 통했으며, 제 인생이 갑자기 없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간이 쌓일수록, 결혼 전보다 더 나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억울했어요. 결혼 이후에도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나, 싶어서요.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그렇게 혼자서 분투했을까, 씁쓸했어요.


그러다 문득 옆을 돌아봤습니다. 매일 본 지 8년째인데도 여전히 신기한 사람 하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 있었어요. 퇴근 후에는 작은 의자에 앉아 매일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사람(언제 써먹을 건데?), 영어도 못하면서 세계 각국에 친구가 있는 사람(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지?), 집에 오면 뮤지컬 배우로 변하는 사람(몸 안에 주크박스라도 있나?), 무엇이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렇게 숨 막히게 사랑한다고?),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기억력 진짜 좋다, 당신?), aka ‘이상한 남편’이 거기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혼 전부터 이상했어요. 모아둔 돈도 직업도 없던 서른셋 여자를 궁금해하는 연하남이라니요. 술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데다, 옵션도 없는 수동차를 몰면서 영업하는 사람도 그때 처음 봤어요. 퇴사 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이나 걷고 돌아왔다는데, 제정신인가 싶더라고요. 단둘이 처음 만나 밥 먹었을 때, 얼굴에 허옇게 일어난 각질이며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양복도 이상했는데, 신기하게 그 모습이 싫지 않았어요. 여행 이야기만 하면 눈이 반짝거리면서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는데 ‘와, 이 사람 참 건강하다’ 느껴졌어요.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는 누군가 이상형을 물을 때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답하곤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세 시간째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2014년 11월, 서른셋 겨울, 평생 혼자 살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해에.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이상한 남편’을 관찰하면서 쓴 아내의 기록입니다. 비혼을 굳세게 주장했으나 어쩌다 기혼 8년 차가 된 여성의 옆 사람 관찰기이자, 예상과 달리 순탄한(?) 결혼 생활은 모두 ‘이상한 남편’ 탓이자 덕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창문 없는 방에서 나만 들여다보던 한 사람이, 창문 같은 사람을 만나 조금씩 밖을 내다보다가, 어느새 창문을 열고 다른 이들을 맞이하게 된 과정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린 얼굴들이 있습니다. 좋은 가정을 꾸릴 자신도, 용기도, 돈도 없어서 혼자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 결혼 전의 저 같은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함께 살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 함께 사는 존재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사람들, 자꾸만 끝나버리는 인연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쯤 되니 익숙한 표정 하나가 눈에 선합니다. 잔뜩 기대하며 읽다가 ‘왜 아직 내 이름이 안 나오는 거지?’ 하며 실망했을 한 사람. 귀엽고도 귀찮은 저의 가족이자, 환상의 짝꿍, 참 좋은 친구인 그에게 이 글을 선물합니다. 고맙다는 말로는 아무래도 부족해서 이렇게나 긴 편지를 썼습니다.


추신.

“결혼 10주년 선물은 이 글로 대신할게.

나는 받고 싶은 선물 딱 정해뒀으니까 그걸로 부탁해, 여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