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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Apr 08. 2021

내 인생이 아닝께.

엄마는 엄마 인생 즐겁게 살아가슈.

Photo by Xavier Mouton Photographie on Unsplash



우리 엄마는 여전히 복작거리며 잘 살고 계시다.

내가 보기에는 복작거리며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어보면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괴롭게 산다.


뭔가 수틀리면 말하지 않는 아빠와 

아직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대단한 인간이 되겠다며 

허황된 꿈을 꾸는 내 남동생 사이에서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산에서 쑥 캐서 쑥부침개 해서 맛있어 먹었다며 엄마가 보내준 사진. 

예전에는 도대체 우리 아빠가 왜 저럴까.

왜 남동생은 그 끔찍한 허세를 떨면서 살까 하며 

우리 엄마 참 힘들게다 싶었다.

그리고 그 험담을 내가 다 들었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니 '다행히' 나는 겉으로 돌기 시작했다.

내가 괴로우니 한국에서 살지 않는 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유학을 왔고 공부를 했고 

호주에서 살게 되었다. 


다행히 잘 풀려서 이렇게 영주권 받고 내 가정을 이루며 호주에서 잘 살고 있다.

꽃놀이도 혼자서 잘 갔다오는 우리 엄마.

나 혼자만 호주에서 잘 살기가 미안해서 

엄마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을 해도 우리 엄마는 그저 한숨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말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도 아니고 엄마의 인생인데 내가 뭐라고 옆에서 훈수를 둔다고 한들 

엄마가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변할 수 없다.


이렇게 냉정해지니 이건 아빠의 잘못도 남동생의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인연을 잘못 만나 벌어진 일이고 

각자의 인생을 사랑을 담아 냉정하게 끊어내지 못한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그렇게 괴롭고 싶다면 엄마가 마음껏 괴롭게 놔둘까 한다.

내가 뭐라고 한들 

엄마의 괴로움이 사라지지도 해결되지도 않을텐데 

굳이 그 괴로움을 내가 같이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인생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 애들 줄 것 쇼핑하는 재미로 사는 우리 엄마.

얼마 전 통화에서 엄마는 '너 호주 가기를 정말 잘했어!'라고 말했다.

맞다. 

그 복작하고 끈적끈적한 가족관계에서 빠져나와 

단순하고 바삭한 내 새로운 가족이 있는 이곳이 나는 좋다.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고 아들에게서 독립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엄마의 괴로움을 응원한다.


어쩌면 엄마의 괴로움이 엄마의 인생의 살아가는 추진력이 아닐까 하고 

심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내 인생 아니니까 엄마는 엄마 혼자서라도 인생을 

그 괴로움 속에서도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내가 지금 내 인생이 즐거운 것처럼 말이다.


엄마, 엄마 인생 재미있게 사슈.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엄마 인생잉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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