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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Sep 30. 2021

체력이 되니까 그런 고민하는 거지.

나처럼 애가 셋에 나이 앞자리가 확 바뀌면 고민도 안 해. 피곤해서. 

Photo by Christopher Beloch on Unsplash


내가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던 때가 십 대, 이십 대 때였다. 

서른 전에 유학 가기 전에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많은 연애를 하고 싶었다.

뭔가 많은 사람을 알면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애는 잘 안돼서 그렇다 쳐도 

내 기준에 괜찮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를 죽이고 잘해주고 피곤해도 웃어주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때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자존감도 낮았고 사랑을 누구에게든 받고 싶었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면 내 존재가 가치 있게 느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어딘가 고장 난 인간으로 보는데 

누가 나를 전적으로 사랑해줄까.


그렇게 전적인 사랑과 우정을 갈구하다가 호주로 왔다.


호주 브리즈번에 오니 사랑과 우정을 갈구할 시간이 없었다.

물론 연애야 하고 싶었지만 

그때 내가 연애를 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과제와 실습.

그 과제와 실습 사이에 벌어야 하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한 일.

한 과목이라도 페일하면 내 영주권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라서 

모든 에너지를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교 생활과 일에 다 집중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엄청난 사치였다.


사실 친구가 없는 편이 더 좋은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신없고 

과제 내느라 헉헉 대는데 브리즈번 시티에 나가서 

친목도모를 하는 것이 너무 벅찼다.


그렇게 살아도 지금까지 남을 인연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론 자주 보기에는 내가 바쁘고 그들도 바빠서 힘들지만 

종종 보면 반갑고 서로의 안부를 챙겨서 

물어주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여전히 있다. 


신기하게도 노력했던 인연은 쉽게 끊어지고 

과연 이 인연이 계속 갈까 싶어 그냥 흘러흘러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내곁에 있다. 


굳이 잡지 않고 굳이 간절해하지 않아도 

나와 맞는 사람은 어차피 내가 뭘 안 해도 

옆에 있게 된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 깨달았다.


그리고 체력과 시간이 없는 애 셋 엄마가 되니 

정말 볼 사람은 어떻게든 그 시간과 체력을 

쥐어짜서라도 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정말 남을 사람은 내가 죽어라 자주 만나지 않아도

내가 뭘 하든 남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친구가 중요하다거나 인간관계에 고민이 있다면 

정말 시간도 많고 체력도 많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대가 애 셋에 개인적으로 하는 프로젝트까지 있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다면 

저 친구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할 시간과 체력이 없다.


인간관계에 고민이 된다면 즐겁게 고민해보시기를.

그것도 한때이고 나이가 들면 

그러든지 말든지 흥흥흥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내 체력과 시간이 다 소진될 때까지 

인간관계에 고민을 해보시기를.

그러다 이건 아니다 깨달으면 친구에 집착하고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까지 즐겁게 흔들리시기를.

젊고 여유가 있으니까 흔들릴 수 있다.


그렇게 흔들리며 걷다보면

어느 순간 인간관계에 초연한 자신이 보일 것이다.


그런 고민도하고 젊음은 참 좋구려! 

체력도 좋아! 

부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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