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하루동안 못 읽는 것이다
호주 전역이 이스터 방학 2주를 맞았다.
우리 집은 방학을 환영하는 집인데
일단 첫째를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하는 일을 안 해서
좀 숨을 돌릴 수 있고
첫째가 둘째와 놀아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하다.
거기에다 첫째가 집안일을 꽤 잘 도와주기 때문에
참으로 편하다.
올 방학 때는 빨래 널기 기술을 가르쳐줄 예정이었는데
예정대로 빨래를 널기 기술을
전수 중이고 첫째는 가르침을 받는 중이다.
방학 때 우리 집의 모토는 뒹굴뒹굴이다.
우리 애들은 집안일이 대충 끝나면
뒹굴거리다가
책 읽고
그러다가 먹고
그러다가 또 기상천외한 놀이를 만들어서 하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레고를 만들다가
또 뭘 붙이고 자르고 하다가
또 먹다가
또 책 읽다가
그러고 있다.
티브이도 없고 아이패드는 학교에서만 하는 걸로
했기에 우리 애들은
집에 있는 책을 많이 읽는다.
읽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벌은
책을 못 읽게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 첫째가 둘째의 테디인형을
일부러 발로 차고 실수로 찼다며 우기길래
크게 혼을 냈다.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예의문제에 관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는 관계로
혼을 낼 때 하는
똑같은 레퍼토리가 있다.
이렇게 행동할 거면 학교는 왜 가며
책은 왜 읽고 밥은 뭐 먹냐~
하이고~ 그냥 다 때려치워라 -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둘째에게 첫째가 장난을 치면서 제대로 사과를 안 하길래
둘째한테 오빠 용서해주지 말자. 어떡해?! 응? 용서해 줄 거야? 물었더니
안 해준단다.
그러면 오빠는 책 내일까지 읽을 수 없어!라고 내가 선언했더니
첫째와 둘째가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깜짝 놀랐다.
둘째가 아니야 그럼 오빠 용서해 줄게 - 라며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첫째는 둘째의 용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그날부터 책 못 읽는 것은
우리 집에서 큰 벌이 되었다.
평화로운 방학 동안 큰 벌이 내려질 뻔 한 날은
딱 그날 하루였다. (아직까지는!)
앞으로도 우리 애들이 책을 좋아하는 한
이 벌은 계속 나의 비장의 카드로
남아있을 것 같다.
후후후후.
생각해 보니 책을 못 읽는 벌을 받다니
큰일도 이런 큰일이 없다.
제발 이 벌을 내릴 만큼 큰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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