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평범

'그래 너 평범해. 그것도 아주 지극히.'

by 주택야독

(2021년 4월 9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역시 우리 XX는 특별해.'

'우리 아들 최고!'

따위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학창 시절에는 주변 친구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더 높은 성적을 얻곤 했다.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중 2때 갑자기 10cm가 넘는 키가 커졌다.

항상 키가 큰 편에 속했고, 어디가든 눈에 띄었다.


그래서인가, 난 늘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유튜브에 도전했던 이유도 그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유튜브는 잘 안 됐고, 포기했다.


난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함을 깨닫는 순간은 고통스럽다.

고통이 싫어, 어떻게든 부정하려 해본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이 내 앞을 막아선다.


그저 애매하다.

특별히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게 없다.

그 또한 고통스럽다.


이건 배신이다.

막연히 특별한 존재가 될 거라고 믿고 살던 과거의 나에 대한 배신.


스스로 배신의 상처를 안겨준다.

'그래 너 평범해. 그것도 아주 지극히.'


어쩔 수 없다.

이젠 알아야 한다.

이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특별함의 시작은 평범함일지도 모른다.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들의 평범함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나의 평범함을 거울에 비춰보면, 어느새 조금 다른 평범함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귀찮지 않아야한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해보자.

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러다보면 문득 문득 특별함이 찾아올 것이다.




2025년 12월, 이 글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정에 젖어본다.


난 중산층보다 어려운 형편의 가정에서 자랐다.

친구들과는 조금 고립된, 홀로 뚝 떨어진 철탑 옆 저렴이 아파트에 살았다.

30평대에 사는 친구들과 달리, 우리집은 20평이었으며 화장실이 하나였다.


고통스러운 평범함 동보아파트.png (이미지 출처: Chat GPT 이미지 생성)


왜 내 주변에는 그런 부유한 친구들만 존재했는지,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꽤나 괴로웠다.

그들보다 못한 우리 집 형편이 부끄러워질때면, 이렇게 다짐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최소한 평균은 되자. 그러면 아무도 나 무시 못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다짐과 동시에 난 막연한 특별함을 꿈꿨다.

'난 특별하니까 나중에 엄청 성공할거야, 틀림 없어.' 라는 식으로 말이다.


평균이라도 되고 싶은 결핍과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자신감(아니, 근자감).

두 사이의 괴리는 내 삶에서 늘 존재해왔다.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

난 많이 꺾이고, 깎이고, 갈렸다.


난 평범하기도, 특별하기도 한 존재다.

그 시절 그렇게까지 중요했던 게,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개의치 않는다.


그저 하루.

또 하루 살아낼 뿐이다.

써나갈 뿐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