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항상 내 생각과는 다르다

쿠팡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by 주택야독

(2023년 10월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쿠팡을 떠나기로 결심.jpg 저녁을 못 먹고 늦게까지 일하는 날 위해, 그녀가 도시락을 사온 적이 있다. 오후 8시, 그때 그 도시락의 따끈함은 아직 잊지 못한다.


쿠팡이 참 싫다!


오늘도 팀장한테 들이받았다.

최근 몇 주 동안, 나에게만 큰 지번(계단 있는 빌라가 많은 구역)을 붙였기 때문이다.

(쿠팡은 주 1회 휴무를 돌아가면서 갖기 때문에, 휴무자의 구역을 팀원들이 나눠서 배송해야 한다. 단, 구역 분배는 팀장의 권한이다.)

심지어는 어제도 갔는데, 오늘도 붙였더라.

그래서 참다 참다가, 결국 아침부터 카톡으로 이야기했다.

눈치도 보이고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할 말을 꿋꿋이 했다.

결국 가지 않게 되었고, 내 라우트(구역)만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바로 ‘지원’이었다.

팀장이 스스로 10시 30분이 간당간당하다고 카톡방에 올린 것이었다.

끝나면 퇴근하지 말고 자신을 도우러오라는 암묵적인 지시였다.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저녁밥을 맛있게 차려놓은 여자친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마음은 어두워져만 갔다.


그녀 또한 출근을 해야하는 처지였다.

원래 속이 좋지 않은 편이라 야식을 멀리하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함께하는 식사'를 위해 날 배려했던 것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내 수량을 겨우 다 마쳤다.

팀 내에서 내가 가장 일찍 마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저녁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도대체 저녁을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배는 고팠지만, 시간을 보니 체한 것 마냥 가슴이 답답했다.


지원을 가지 않으면 눈치보이고,

지원을 가자니 밥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한 상황이었다.


결국 '철판'을 깔고 그냥 집에 왔다.

전화도 하지 않고 무작정 집으로 트럭을 몰았다.


집에 도착했고, 따끈따끈한 밥과 국, 정성어린 반찬들과 함께 그녀가 나를 반겨주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서러움이 차오르며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렇게 우리 잠시 서로를 안고 있었다.


몇 마디의 말보다 훨씬 큰 위로와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애써 핸드폰을 방 안에 두고 뒤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혹시 전화라도 올까봐 걱정을 하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전화는 오지 않았고, 무사히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팀장은 11시 넘어서야 일을 마쳤고, 별 일이 생기진 않았다.

놀라운 건, 아무도 팀장에게 지원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 팀장에 대한 팀원들의 평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상황이었다.


팀장 아저씨가 짠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냥 희생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까지 충분히 희생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희생이 당연시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희생하지 않으면, 오히려 눈치를 받고 욕을 먹게 되는 상황이었다.


내일이 걱정되긴 한다.


또 얼마나 분위기가 냉랭할지,

또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혹시 취조하지는 않을지 등등..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마음은 생각보다 가볍고 편한 상태였다.

여자친구와 상의를 했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쿠팡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다른 택배사를 알아볼 것이다.


반드시 2회전을 해야되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과,

늦어지면 지원 가야하고 눈치봐야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단지 아파트라는 좋은 구역을 놓치더라도,

적어도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시간에, 일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너무 간절했다.


나에겐 돈보다 그녀와 함께 하는 저녁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놈의 택배 때문에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었다.

마음과 심장박동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나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나를 인도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또 기도를 하고 잠을 자야겠다.




인생은 항상 내 생각과는 다르다


필수적인 2회전.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늦게 끝나는 점.

안 그래도 늦게 끝났는데 지원까지 가야한다는 점.

주일과 공휴일, 명절에 쉬지 못한다는 점.


이 4가지 단점 때문에 나는 쿠팡을 떠나 타택배사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현 수입에서 100-200만원 정도의 월급이 줄더라도, 워라벨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생각과 상이했다.


오늘 연락을 해본 곳은 H택배였다.

마침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나름 괜찮은 노선도 있었다.


하지만, 벌이가 너무 적었다.


완전 절반까지는 아니여도, 내 수입이 거의 반토막 나는 듯 했다.

센터도 집과 멀었고, 똥짐(무거운 짐)도 많고..


내 생각보다 단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급감할 수입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확실한 장점 하나는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진정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글에 올인하는 것이 가장 높은 가능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적인 승부수를 띄어도 될지 너무 고민이 되었다.

이러다 빚이 느는 건 아닐지,

다시 경제 파탄이 나서 쿠팡으로 돌아가야하는 건 아닐지 등..

여러 불안이 몰려왔다.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기도했다.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길 바라며 기도했다.

정말 모르겠어서,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어서.


아직 기도의 응답이 왔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염두해둔 선택이 주님의 뜻으로 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일 아침이다.

그때까지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그 전까지 열심히 기도해보자.


현재 내 생각은 쿠팡을 쭉 하는 것이다.

과연 주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길 원하실지..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나를 인도하여 주실지 정말 궁금하다.


어떤 결정을 하든 확실한 것 한 가지.

난 쿠팡을 떠날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난 꼭 떠날 것이다.

돈보다 소중한 건, 내 사람과의 시간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