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못한, 아니 적보다 못한 관계.
(2020년 12월 25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빠께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늘은 바로 크리스마스다.
아빠의 목소리는 의외로 차분했다. 아마 마음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으셨던 것 같다.
전라도 광주에서 장례식이 열리지만, 아무리 멀고 바쁜 일이 있어도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와 평소에 친한 편이 아니었기에 크게 슬프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 소식을 듣고나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난 주변 지인의 죽음을 처음 겪어본다. 첫 장례식 참석이 내 할머니라니..
할머니와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사이였지만,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할머니는 평소에 나와 동생에게 사소한 잔소리를 많이 하시며 호통을 내셨다.
"차 조심하고 밥 잘 챙겨먹어!!"
"술 먹지 말라. 건강 해친다니께."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귀찮기만 했던 그 말들이 귀에 맴돌았다.
스스로 무덤덤할 거란 생각과 다르게 마음이 아팠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할머니의 죽음보다 오늘 나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건, 다름 아닌 할머니 장례식 참석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를 공개적으로 데리고 가야할지, 언제 몇시에 가야할지, 꼭 동생을 태우고만 가야할지, 가면 언제까지 있어야할지 등.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전날 밤을 새며 편집을 한 뒤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그 중 나의 머리를 골치 아프게 했던 것은 코로나라는 시국과 갔다오는데 들 돈과 시간이었다.
스스로가 간사하게 느껴졌고 죄책감도 들었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은 그 죄책감을 극으로 치닫게 하기도 하였다.
그 중 가장 나의 머리를 무겁게 누른 것은 아빠였다. 너무 눈치가 보였다.
‘너 변했어. 너무 너만 아는거 아니야?’라는 말은 참 비수로 꽂혔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증오가 더 크게 들었다.
매주 주말마다 부부싸움을 일삼았던 부모님. 아빠는 특히 성격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의 소유자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난 무척 괴로웠다.
심지어는 여자친구를 집에 초대했을 때마저 그런 모습을 보이니, 내 기대와 아빠에 대한 애정은 철저히 무너져내렸다.
그때부터 사이가 틀어졌고, 하필 그것이 극에 달할 때 할머니 장례식을 가게 된 것이었다.
특유의 날카롭고 높은 음역의 호통 소리가 섞인 전화 통화가 끊기자, 많은 생각과 감정이 북받쳐올라왔다.
특유의 독단적이고 극단적인 성격 때문에 내가 얼마나 눈치를 보고 살았던가..
자발성을 상실한 채 아빠 말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그냥 순순히 따랐던 세월들이 참 한스럽게 느껴졌다.
끝내,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감정적 감금을 당해왔던 나’라고 말이다.
그 어둠과 가식 속에서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은 여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처음 해보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진짜 나'와 '사람들이 아는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을 제대로 마주해야할 때마다, 극단적으로 변하거나, 도망쳐왔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큰 힘듦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안타깝게도, '진정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모습이 우리 부모님한테도 많이 보였다.
그동안 이해 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안 좋은 행동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낸 기분이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내가 부모님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좀 많이 늦은 것 같다.
이미 부모님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많은 막말과 상처들을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요즘 부모님을 떠올리면 답답하고 증오 섞인 감정이 주를 이룬다.
아빠와의 전화에서도 역시 그 감정은 극에 달했다.
아빠는 항상 이미 정해진 판결처럼, 나의 의견을 말해도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부모님이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이기적이고 나쁜 인간, 혹은 버릇 없는 자녀로 몰아세웠다.
무엇보다 짜증났던 것은 지금 내 상황이었다.
아빠의 카드로 40만원씩 용돈을 받는 것.
그리고 항상 40만원을 오바하며 더 쓴 금액은 마치 신용카드를 쓰듯, 매달 아빠에게 돈을 다시 갚아가는 상황 말이다.
무척 화가 나도, 눈치가 많이 보였다.
떳떳하지 못해서 오히려 막무가내로 달려들곤 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철판’을 깔고, 남 생각 안하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
그게 내 고질적인 악습관이자, 아빠와의 공통점이었다.
이런 내가 너무 싫고, 이런 상황도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성공을 갈망했던 하루였다. 특히 경제적 독립과 성공 말이다.
여자친구와 상의한 끝에 내 신용카드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러다 신용불량자 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막연히 두려웠지만, 이제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코너에 몰리는 상황일지라도,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나와 주변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차분히 행동하기.
앞으로의 내 숙제다.
아빠랑은 정말 다른 인간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진정으로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2025년 12월 1일, 5년 전 글을 다시 읽었다.
부모님, 특히 아빠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당시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다.
현재 부모님과 서로 거의 왕래를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너무 지쳐버렸다.
아무런 희망과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발길을 끊은지 몇 년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주, 큰 외삼촌 장례식이 있었다.
오랜만에 부모님 얼굴을 보았다.
갑자기 확 늙은 모습에 눈물이 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틈조차 없었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많은 친척들이 와계셨고, 우리 둘을 향한 수많은 질문과 인사에 정신이 혼미했다.
두 분은 좋아보였다. 정말 평소처럼 그대로셨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 분들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긴 할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하는 모습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1년 전 쯤인가, 최근 통화에 아빠는 너무나도 가볍게 연을 끊자고 말하셨다.
동생과 아빠의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결국 나에게까지 막말을 퍼부은 것이었다.
그 후, 어떤 사과와 반성의 말 한마디 없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나에게 잘 왔다니, 어떻게 지내냐니, 뭐가 어쨌다니 말을 건넨다.
도저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난 불효자일까? 호로자식일까? 효자가 될 수나 있을까?
남보다 못한, 아니 적보다 못한 관계.
그게 딱 지금의 우리 관계다.
부모님 생각이 떠오르는 날이면 늘상 난 기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능력으론 할 수 없다.
근데 걱정이 많다.
앞으로 상견례는 어떻게, 결혼식은 어떻게 할지..
진짜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