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을 좋아하고, 교회를 다닙니다.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

by 주택야독

(2020년 12월 25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힙합과 교회 1대1.png (이미지 출처: ChatGPT 이미지 생성)


난 힙합을 좋아한다.

난 교회를 다닌다.


힙합을 들으면 돈이 보이고, 큐티를 하면 하나님이 보인다.

나는 정말 영향을 잘 받는 귀가 얇은 사람인가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둘 중 힙합이 더 좋다.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듣기 좋고, 듣고 있으면 괜시리 나도 덩달아 멋있고 돈 많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보면 허세고, 또 다르게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그치만 오늘 큐티를 하며,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최근 큐티를 밀리던 나는 래퍼들의 ‘FLEX’ 혹은 ‘YOLO’ 마인드에 꽤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특히 돈이 많아져서 하고 싶은 걸 언제든 즉시 할 수 있게 되는 것, 다르게 말하면 ‘경제적 자유’에 큰 관심이 생겼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돈이 없는 사람이든 돈에 지배 당하기 참 쉬운 세상이다.

나도 매우 자주 지배를 받는다.

지금은 돈이 없기 때문에 그 지배는 나에게 큰 부담과 스트레스, 조급함으로 다가온다.

오늘을 예로 들면, 아빠 카드 때문에 머리가 아파져서 두통약까지 먹었던 일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생존하기위해 돈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돈이 모든 우선순위의 최상층 꼭대기에 있어선 안된다.

최근에 읽은 신사임당님의 책 ‘킵고잉’에 ‘돈과 상품을 항상 방향이 반대다. 돈은 늘 아래로 흐른다.’라는 말이 있었다.

나에게도 가장 중요하게 두고 살아야할 인생의 가치가 있다.

바로 나를 이 세상에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또 앞으로 존재하게 해주실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벌써 까먹은게 놀랍지만, 며칠 전에 하나님의 감사함에 크게 감동받은 날이 있었다.

공장에서 조립을 하며 눈물을 흘릴 뻔 할 정도로 마음의 큰 울림을 느꼈다.

문제는 항상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의 귀찮음, 나태함, 지루함 때문에 내 코 앞에 거져 놓여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 시간, 기도를 소홀하게 여긴다.

큰 문제다. 이제 나 정도면 핑계를 대선 안된다.

말씀을 모른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모른다, 무엇이 옳은지 모른다 등은 정말 하찮고 부끄러운 변명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 성장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참 어려웠던 것처럼 성경과 예배, 기도 또한 그런 것 같다.

책을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명확히 규정한 순간부터 책읽기에 즐거움을 느꼈던 것처럼 성경, 예배, 기도 또한 그래야한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다면 어쩌면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힘입고, 누군가를 전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해보자, 힘 주지 말고 힘 풀고, 다시 한번 해보자.



2025년 12월 2일, 이 글을 5년만에 다시 읽었다.

돈보다 믿음 생활을 더 높은 가치로 두겠다는 다짐의 글이었다.


그때 깨달은 우선 순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까?


아니, 전혀.

오히려 뒤바뀌었다.


빚이 있고, 매달 나가야할 돈이 있다.

시간은 없고, 해야할 일은 많다.

잠은 부족하고, 매일 아침 출근은 해야한다.


한마디로, 쪼들림의 반복이다.

특히 돈이 그렇다.


어느샌가 주일 예배에 지각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기도는 습관적인 식전 기도뿐이고, 말씀은 등한시한지 오래다.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나의 불안정한 삶이 핑계가 될 수 있을까?

다시 그때의 꾸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프다.

다시 믿음 충만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현실의 팍팍함이 솔직히 힘들다.


부족한 나를 온전히 이끌어주시길..

오늘 밤은 꼭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