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쓴 나의 시간

15년 헤어디자이너의 기록_1부 시작의 자리

by Hommy

2장. 인턴 시절_ 바닥 청소와 샴푸에서 배운 기본


나의 첫 미용실은 삼촌에게 소개받은 강남의 미용실이었다. 직원은 총 3명.

원장님과 디자이너 한 분, 두 분의 기술의 뒷받침이 되어줄 인턴 한 명, 그게 바로 나였다.

처음 면접으로 보러 갔을 때, 인생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날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의 아르바이트 면접과는 느낌이 매우 달랐다, 여러 가지를 물어보던 아르바이트와는 달리

미용실 면접은 오히려 간단했다. 휴무일과 급여수령방법, 교육의 커리큘럼, 매장의 바쁜 정도를 쭉 말씀해 주시곤 언제부터 나오면 된다. 그게 끝. 그렇게 나는 진짜 인턴이 되었다.


그리고, 첫 출근. 미용실 문을 처음 열고 들어갔을 때, 얇은 유리문 하나로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다. 드라이기의 뜨거운 바람, 샴푸 향과 섞인 약품 냄새, 바쁘게 움직이는 디자이너 선생님과 원장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리듬. 그 공간은 내게 낯설면서도 설레는 무대 같아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 바닥을 쓸고, 거울을 닦고,

전날 사용했던 볼과 붓, 롯드와 파지를 정리하고, 수건을 개고, 손님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샴푸를 하기까지 2주간 디자이너 선생님의 옆에서 어떻게 하는지 손만 쳐다보는 날이 많았다.

첫날은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옆에서 당당히 지켜보았지만,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손에

물도 못 묻혀보고 퇴근하는 날들이 반복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손으로 직접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안된다는 선생님과 원장님의 말씀에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디자이너 선생님의 연습용 가발을 샴푸대에 눕혀 물 뿌리는 시늉부터 두피마사지 하는 모든 순서들을 복기하며 연습해 왔다. 그렇게 1주가 지났다.


나의 첫 샴푸 상대는 다름 아닌 원장님이었다. 오픈시간 딱 15분 전,

"지윤아, 내 머리 좀 감겨봐."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간단한 요구이지만 나에겐 수능 날 같은 두려움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20년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을 나의 첫 상대로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내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지만, 그런 내 옆에서 등을 토닥여주던 디자이너 선생님이 계셨다.

손을 떨며 시작했던 나의 첫 기술, 샴푸는 선생님의 눈빛 코치와 원장님의 순간 피드백으로 일주일 만에

진짜 샴푸쟁이가 되었다.


지금은 샴푸를 하는 것은 정말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15년 전의 그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로는 커트하러 오신 3층의 학원 선생님을 시작으로 모든 샴푸는 나의 일이 되었다.

사실은 샴푸라는 이름의 '고객 서비스'보다 선생님들의 '뒤처리'에 가까웠다.

물에 젖어 하루 종일 축축했던 손끝은 쩍쩍 갈라졌고, 하루가 끝날 무렵 내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는 매일 아침이 즐거웠다. 머리카락이 쌓여 있는 바닥을 쓸면서도,

고객님이 나의 손길로 피로가 풀어진 표정으로 고맙다 말하는 모든 날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나는 언젠가 '저 자리(고객의 머리를 직접 만지는 자리)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강해졌다.


✦ 작은 실수에서 배운 교훈

샴푸를 하던 초반, 나는 실수를 했다. 고객님의 얼굴에 물을 뿌리기도 했고, 물 온도가 갑작스럽게 변해 "뜨거워요!" 혹은 "차가워요!"라는 불평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원장님과 선생님의 눈초리가 굉장히 따가웠고, 고객님들에게는 반복해서 사과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고객의 표정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샴푸를 해주는 이 짧은 시간도, 고객에게는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순간일 수 있구나." 샴푸는 단순히 머리를 감겨주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 피로를 풀어주는 경험일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샴푸에 '내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정확한 물 온도를 위해 고객에게 말을 걸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했고, 거품이나 물이 얼굴에 튀지 않게 수건을 얼굴에 대드리기도 했다.

머리와 함께 고객의 피곤을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손끝을 움직였다. 놀랍게도 고객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진짜 시원하네요.", "나는 진짜 좋은데, 그렇게 하면 손 아픈 거 아니에요?" 작은 칭찬과 걱정 한마디가 나를 다시 샴푸대로 이끌었다.


✦ 기본이 가장 중요한 이유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인턴 시절을 떠올린다. 그때 배운 건 단순하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바닥 청소를 대충 하면 다음 고객이 앉는 자리에서 바로 드러난다. 수건을 성의 없이 개면 디자이너가 불편하고, 결국 고객도 불편해진다. 작은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 큰 신뢰도 쌓을 수 없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이 교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헤어 디자인은 화려한 커트나 트렌디한 컬러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객의 마음을 읽고, 작은 디테일을 챙기며, 기본기를 단단히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인턴 시절의 바닥 청소와 샴푸는 단순한 잡무가 아니었다. 이것이 내 커리어를 지탱해 준 가장 튼튼한 기초였다.


✦ 나를 움직였던 한 마디

인턴 생활 7개월 차 무렵, 원장님이 말씀하였다.

"지윤아, 우리 집 식구들이 나보다 네가 해주는 샴푸가 훨씬 좋대."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불을 켰다. 내가 하는 손길이 24년 차 미용사를 이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날 이후로 더는 샴푸밖에 할 줄 모르는 애가 아닌, 고객을 가장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그렇게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인턴 시절은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텨낸 덕분에 나는 오늘도 가위를 쥐고 있다.

바닥을 닦던 손, 샴푸를 하던 손이 이제는 수많은 고객의 인생 순간을 디자인하는 손이 되었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인턴이라면, 정말 힘든 날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일하면서 정말 뿌듯했던 시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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