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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Jul 10. 2021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난

신랑의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주거지를 옮겨서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나는 웹디자인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웹디자인 일을 하였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하는 것은 전쟁 같은 일이었다.

아이가 5살이 되어서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보다 많이 어려 보였지만 그녀의 아이는 내 아이보다 1살만 어렸다. 어린이집 차를 매일 아침저녁에 기다리면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인연이 나와 그녀에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그녀와 사람이 그리웠던 나의 만남은 독특했다.

오늘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하는 그녀와 나는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녀가 우리 집 앞에 감자를 놓아두었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면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통화로 달랬다.

"나는 원래 집에만 있는 스타일이 아닌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너무 힘들어, 나는 늘 돌아다녀서 친구들이 나와 약속을 잡으려면 미리 연락을 해야 했었다고."

"맞아요 언니! 나는 원래 집에만 있는 사람인데 언니를 만나서 자꾸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니까요."

"정말 예전이 그립다.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 멤버들 모두 함께 배우러 다니고 주말농장도 함께 하고 그때는 그것이 일상이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어요"

"언니, 나는 언니를 만나기 전에 많이 우울해해서 신랑이 회사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를 해 나를 걱정하곤 했는데 언니를 만나고 하루가 너무 바빠져서 신랑이 제일 좋아했었어요. 내 일상이 많이 바빠지니까 잠도 잘 자고 언니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도 알게 되어서 멤버도 형성하고 정말 즐거웠어요."

"무슨 내가 중심이야, 아니에요! 그냥 같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게 된 엄마들 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인 거지 나는 중심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대 덕에 내가 건강을 잃었던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대가 운전을 자주 해 주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잖아요. 고마워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어서 잘 지내고 다음에는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얼굴을 보자."

오늘 나와 그녀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그녀는 기관지 알레르기가 심한 나에게 어쩌면 위험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될까 봐 항상 나의 집 문 앞에 농산물을 두고 사라진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나는 건강을 크게 잃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멤버들이 있어서 그 시간을 버텨내었던 것 같다. 신랑은 회사를 가고 아이는 학교를 가면 건강이 좋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둔 나의 시간은 무료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데 교통이 복잡하거나 주말농장을 하고 싶은데 주말에 신랑이 하루만 쉴 수 있어서 신청하기 힘들다고 말을 하였더니 그녀와 멤버 중 한 명, 둘이서 큰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멤버 전원을 태워서 평일에 이동을 해주었다. 다 같이 공방에 가서 배우는 날도 있었고 6명 중에 단 2명만 주말농장을 신청하고 나머지는 그냥 함께 가서 농사를 도와주었다.

농사를 전혀 모르는 나에게 시골에서 자란 그녀들이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내가 고랑을 호미로 만드니까 삽을 들고 와서 아주 쉽게 고랑을 쓱쓱 만드는 그녀들의 뛰어난 실력에 나는 감탄을 하였다.

봄에는 뻐꾸기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잡초를 뽑았다. 잡초만 뽑은 것이 아니라 서로 신랑과 아이 그리고 본인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이 가득했다.

멤버 중에 캠핑 장비가 있는 사람이 캠핑 장비를 챙겨 와서 주말농장에서 밥도 지어먹었다. 고기를 굽고 밭에서 채소들을 수확해 와서 먹는 점심은 정말 꿀맛이었다. 여름작물을 수확하고 배추 모종을 심는 다른 밭을 구경하면서 우리도 배추 모종을 심자고 의견을 모았다.


© lyetstanphotography, 출처 pixabay


텃밭 두 곳에 배추 모종 100개를 심은 우리는 가을에 어마어마한 배추를 수확하게 되었다. 배추 모종 중 일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넉넉하게 심은 우리의 잘못이 매우 컸다. 정말 배추 모종 단 한 포기도 죽지 않고 다 잘 자라서 완벽하게 100포기의 배추가 되었다.

결국 배추 100포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해서 멤버 6명이 머리를 모아서 의논을 하였다. 저 많은 배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중에 누군가가 김치를 담글 줄 알면 한 곳에 모여서 다 같이 김치를 담그자고 말을 했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배추를 수확해서 큰 차를 소유하고 있는 두 명의 차에 나누어 실어서 아파트 안으로 배추 100포기를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배추를 싣고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모른다. 정말 어깨와 팔이 너무 아팠다.


© allybally4bphotography, 출처 pixabay


그리고 오늘 통화한 그녀의 집으로 배추를 옮겨서 거실에 비닐을 깔아놓고 배추를 다듬고 욕실에서 씻고 큰 찜통 두 개에 물을 팔팔 끓여서 한없이 배추를 데쳐내었다. 그녀가 우리 중 유일하게 배추를 데칠 줄 알아서 배추를 데쳐서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가 배추 된장국을 끓여먹자는 의견에 우리 모두 동의하였고 멤버 전원이 행동에 옮긴 것이다.

우리 멤버 6명은 그날 그녀에게 배추 데치는 방법을 배워서 배추 100포기를 데쳐내었고 소분해서 비닐봉지에 분리해 담았다. 그것을 동일한 개수로 나누어 가져서 겨울이 지나 다음 해 봄까지 내내 배추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지금도 배추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게 되면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든든한 가족처럼 지낸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난

삶의 여정에 신의 선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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