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Aug 20. 2021

여행지에서 일상을

나는 신랑이 퇴직하면 2년 정도 유럽에서 살고 싶다.

내가 청춘 시절에 머물렀던 유럽에서 신랑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다.


시간에 쫓기는 여행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을 보내고 싶다. 내가 이런 소리를 할 때마다 유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신랑은 퇴직 후 유럽에서 살다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 Free-Photosphotography, 출처 pixabay                                 / 템즈강 너머에 빅벤이 보이는 산책로

나와 내 가족은 지금 중학생인 아이가 초등 5학년 때 런던과 프라하에서 조금은 긴 시간을 머물다 온 적이 있다. 신랑은 런던에서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감탄을 했고 내셔널 갤러리와 대영박물관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매우 흥미로워했다.



신랑과 아이는 템즈강 너머에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산책로를 좋아했다. 우리는 런던에서 일상을 보낼 때 거의 매일 그곳을 산책했다. 우리들의 대화는 즐거웠고 행복한 이야기는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그 산책로는 끝이 잘 보이지 않았고 길옆에 큰 나무들이 초록의 잎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그 초록잎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실크 커튼처럼 우리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월의 런던은 싱그러웠다.


런던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행자로서 일상을 보내는 그곳의 삶에서 신랑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열린듯했다.


체코 프라하의 불타바강, 프라하 성

그리고 내가 청춘시절부터 너무나도 사랑한 도시 프라하로 가서는 신랑은 말을 잃어버렸다. 5월 중순의 프라하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중세의 어느 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가 중세로 들어간듯했다. 프라하의 큰길로 다니는 것보다 우리는 작은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보물찾기 하듯이 숨겨져 있는 책방과 카페를 찾아내어 그곳에서 책을 읽고 커피도 마시면서 여유로움을 즐겼다. 블타바 강이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나는 어느 작은 골목에서 선물처럼 만난 오래된 카페의 따뜻하면서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가 더 좋았다.



신랑은 런던에서는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분위기를 좋아했고 프라하에서는 클래식한 음악이 흐르는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안에 주인공으로 들어가 있는듯한 느낌을 좋아했다. 두 도시에서의 일상을 여유롭게 보낸 신랑은 퇴직 후에 2년 정도 유럽에서 살고 싶다는 나의 이야기에 동의하게 되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프라하에서 설레는 마음에 매번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새벽의 프라하는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5시쯤 일어나서 산책을 나가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영화 세트장 같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프라하 구시가지의 풍경이 그대로 내 눈에 담겼다.


이른 아침부터 햇살은 눈이 부셨고 사람이 없는 구시가지 광장에 오래된 건축물들과 정돈된 카페들은 쏟아지는 오월의 햇살로 인해 예쁘게 반짝였다.



작은 돌이 모자이크를 맞추듯이 깔려있는 구시가지 광장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누군가 내가 아는 예술가들도 산책을 하면서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곳을 걸었을 거야"라고 공상을 하였다.



한참을 걸으면서 구경을 해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 그림을 그리듯이 천천히 내 마음에 담기는 프라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립고 그립다.



나는 여행지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빠른 속도로 다니는 여행은 나에게 맞지 않다. 나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앉아서 시간의 흐름에 내 마음을 맡기고 여유 있게 구경을 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가만히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불어오는 바람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머무르는 곳의 오래된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흔들 때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글을 쓰거나 스케치를 한다. 그렇게 긁적이면서 내 마음을 그곳에 두고 온다.



청춘시절에 나는 유럽 곳곳에 머물렀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늘 그곳으로 떠났다.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안에서의 여행은 자유로웠다. 내가 보고 싶은 미술품이 있으면 보러 가고 궁금한 유적지도 직접 내 눈에 담았다. 유럽 안에서 열리는 다양한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은 나의 마음을 항상 즐겁게 하였다.

어릴 때부터 책에서만 만났던 예술가들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미래를 알 수 없어서 설레이는 삶은


마음이 머무르는 곳으로 떠나는 나의 여행과 닮아 있다


여행지에서 일상을 보내고 싶은


나의 그리움을 담아


눈에 보이지 않는 엽서에 기록해


런던과 프라하로 보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총량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