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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Nov 26. 2020

삶의 마지막 순간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한 여름의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초록 잎이 더 선명하게 보이던 나의 막내 이모의 쉰세 번째 여름 이야기이다.

내 이모는 어릴 적부터 머리가 똑똑해서 늘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집안의 자랑이었다.
막내로서 응석도 있었고 웃을 때는 외할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늘 엄마가 말씀하시곤 했다.
나의 엄마의 형제들은 몸이 약해서 일찍 하늘별로 가셨고

내 엄마에게 유일하게 남은 동생이었다.
나에게도 유일한 이모였고, 이모와 나는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아서 만나면 늘 토닥거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모가 나에게 장난을 거는 거였는데 사춘기 시절의 나는 이모가 불편했다.


이모는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온 이모부와 결혼을 하고 이모부가 늘 배를 타고 선장으로 일을 하러 멀리 떠나면
알뜰히 살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워낙 검소하게 생활을 한 이모는 이모부의 많은 형제들을 다 대학 공부까지 시키고 결혼할 때도 많은 돈을 스스럼없이 내놓았다고 나의 엄마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이모에게는 삼 남매가 있다.
큰딸과 둘째 딸의 나이가 열 살 차이가 나고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두 살 차이가 난다.
이모는 살림을 알뜰하게 하고 아이들도 학원을 보내지 않고 이모가 직접 가르쳐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돈도 모을 수 있었다.


한동안 나는 대학생활을 했고 또 유학 생활도 해서 가끔 전화로 안부 통화만 할 뿐 이모를 잘 못 만나고 지내다가

내 결혼식 때 이모를 만났다.
이모가 50살이 막 되었던 나이였다.
그때는 나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이모의 나이 근처에 가까이 가고 있어서 이모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조카가 결혼을 하니 기쁘고 축복해 주고 싶었을 것 같다.
나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결혼해서 꼭 잘 살라고 말하는 이모가 그 웃음이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후로 3년이 지나고 이모의 둘째 딸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이모의 둘째 딸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발견했고
강아지가 주인 없는 것을 확인을 하고 불쌍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이모는 겉으로는 냉정한 척을 하지만 속정이 많아서 집으로 데려온 강아지를 다시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깔끔했던 이모의 성격에 강아지의 지저분함이 참기 힘들었다.
이모는 바로 강아지를 목욕시키려고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열심히 씻어냈다.


그렇게 강아지를 목욕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모는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를 타고 인천에 한 대학병원으로 갔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의 엄마 전화를 받았다.
이모가 임종할 것 같으니 얼른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신랑과 함께 급히 인천의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이모는 조용히 하늘별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이모의 나이는 53세였고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딸 그리고 중학생인 아들이 있었다.


이모와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는 차 안아서 이모의 임종 전화를 받고 서럽게 울었다.


우리 집은 알레르기가 다양하게 있다. 그래서 면역력이 매우 약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골골 한 편이다.
이모가 팔에 상처가 있는 줄 모르고 강아지 목욕을 시켰는데 그 강아지는 밖에서 살던 강아지라 안 좋은 균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안 좋은 균이 이모 팔에 있는 상처로 들어가서
급성 패혈증을 일으켰고 발병한 지 2시간 만에
이모는 하늘별로 가셨다.



지금 이모의 나이와 비슷한 40대 후반인 나는 문득문득 이모 생각이 난다.
나는 중학생인 딸을 두고 차마 하늘별로 못 갈 것 같은데 이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셋을 지구별에 두고 떠날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이모부가 계시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이모는 걱정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애달픔을 지금 이모의 나이와 비슷하게 되어가고 있는 내가 알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잘해주던 또 친하게 지내던 친척들을 몇 번 떠나보냈다.
그래서 죽음이 낯설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다고 그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나의 슬픔이 이모부와 이모의 자녀들보다 크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너무 슬펐다.



세상에 하나 남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나의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마음은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있다.
나는 매일 의식처럼 하는 행동이 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한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전화를 해서 나의 부모님과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


오늘이 내 삶에서 마지막인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행복한 내 모습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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