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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20. 2020

나의 홈스테이 맘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나를 홈스테이 하는 곳으로 데려다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어색하게 홈스테이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 독일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내 방을 안내받았다. 고단한 비행이 끝나고 무사히 홈스테이에 도착해 비로소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 방에서 깊은 잠에 들었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짙은 밤색의 나무틀을 가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어릴 적 내가 본 유럽의 그림엽서처럼 보였다. 여기가 독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실감되는 아침이었다.



독일인 부부는 나이가 6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다. 남편은 박물관에서 오래 근무하다가 퇴직을 했고 아내는 간호사로 근무를 했다고 나에게 설명을 하였다. 집에서 지켜줘야 하는 것과 또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을 들었다. 집에 대한 구조를 알아야 한다며 나에게 안내를 하였고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눈으로 빠르게 익혔다. 그렇게 나의 홈스테이는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어느 정도 서로 익숙해지고 난 후 나와 그녀는 많이 친해졌다. 늘 심심했던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서 이것저것 질문하는 내가 마치 아이처럼 보였나 보다. 그녀는 늘 나에게 "아이"라는 호칭으로 불렀고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보면 진심으로 나를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나를 깨워서 학교 갈 준비를 시키고 내가 아침을 안 먹고 가겠다고 말을 하면 샌드위치를 들고 그녀는 내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기서 안 먹어도 되니 학교에 가지고 가라며 챙겨주었다.



학교에서 과제물이 나와서 내가 어려워하면 그녀는 내 옆에서 늘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독일어로 그날 있었던 일을 일기로 쓰게 하고 꼭 그녀가 교정을 봐주었다. 또 하루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설명을 하게 해서 나는 얼마 안 돼서 독일어로 말하고 듣고 공부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나와의 언어장벽을 허물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독일어를 가르쳤다.



어느 날 저녁 그녀와 나와 둘만 있는 시간이었을 때 그녀가 다락방을 구경시켜준다고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 다락방은 내가 소설책에서 읽은 "하이디"에 나오는 방처럼 창문이 사선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창문을 위로 열어서 바깥의 공기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나에게 별이 더 잘 보이게 해 주었다. 하늘은 칠흑처럼 어두운데 별빛이 눈이 부시게 빛나서 그 별들이 내 눈 안으로 쏟아져 내려오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별빛을 보느라 나는 추운지도 몰랐다. 내가 탄성을 지르면서 아이처럼 좋아하니 그녀도 나를 보면서 밝게 웃었다.



함께 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녀가 그녀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녀의 지금 남편은 재혼이고 첫 번째 남편과 사이에서 딸이 있었는데 어릴 때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의 남편과는 아들이 하나 있고 그 아들은 드레스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의 딸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녀가 많이 슬퍼 보여서 나는 그녀를 안아주고 위로를 건넸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더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학교에서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친구들과 좀 어울리고 싶으면 집으로 전화를 해서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나를 많이 기다리기 때문에 나는 당연하게 그렇게 하였다.




독일은 아직 추운 겨울이었는데 나는 낭만을 찾아 스페인 친구와 라인강 다리를 걸어서 통과하는 무모한 짓을 했다.
그날 이후 지독한 감기에 들었고 병원에 갔지만 독일 의사는 감기로 약을 처방해 주지 않아서 약 한 알 못 먹고 끙끙 앓고 있었다. 목이 아프고 열도 나서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녀가 집에 있는 약을 나에게 먹이고 밤새 나를 돌봐 주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의 열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녀는 나를 위해 치킨 수프를 끓여 놓았다. 치킨 수프는 우리나라의 삼계탕과 비슷한 음식인데 여러 가지 채소와 닭의 살을 넣어서 수프로 끓여내는 것이다. 보통 아이가 감기나 아플 때 치킨 수프를 요리해서 먹인다고 나는 그녀에게 들었다.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치킨 수프를 먹고 감기에서 나았다.



그녀의 집은 도시의 외각에 있어서 자연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와 거리가 있어서 나는 통학이 조금 힘들었다. 또한 학교의 기숙사의 비용과 한 달 생활비를 합쳐도 내가 지불하는 홈스테이 한 달 비용이 훨씬 더 비싸서 나는 가격적인 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나를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몸과 마음이 자유롭지가 않았다.



물론 원어민과 함께 생활하면 그 나라의 언어는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점을 생각할 때는 내가 그녀의 집에서 홈스테이 하는 것이 비용이 비싸도 나의 독일 생활에서는 더 유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 20대 초반의 청춘이어서 나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그녀에게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을 했고 그녀는 놀랬고 또한 매우 슬퍼했지만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을 나와 기숙사로 들어가는 날 그녀는 나에게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독일에서 언어를 빨리 배우고 제대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소용되었을 것이다.
본인 아이에게 하듯이 일일이 발음을 교정해 주고 내 과제물과 일기를 챙겨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의 등교를 챙겨주고 내가 아플 때 옆에서 나를 간호해 준 따뜻한 마음의 홈스테이 맘이었다. 홈스테이를 해도 보통은 집과 식사를 제공하고 그 이후에는 각자의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시간을 들여서 나에게 배려해 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든다. 비록 어느 정도 나의 자유가 제한되긴 했었지만 그건 그녀가 나에 대한 애정의 또 따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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