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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Dec 22. 2020

여행지에서 만나 친구가된 스위스 노부부

여행자에게 선의를-라우터브루넨 1편

햇살이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한여름의 어느 날  나는 라우터브루넨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독일에서 공부할 때 주말마다 독일 도시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주말 기차표를 구입하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기차를 계속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뜻하지 않은 여행지의 인연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동행자를 배려해야 하는 의무감이 없어서 나에게 홀가분한 마음을 주고 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게 혼자 하는 여행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여름방학 때 유럽여행을 계획했고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에 나는 여러 번 배낭여행을 다녀온 유럽 친구들이 주는 정보를 작은 수첩에 적어서 그것 하나만 믿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 중에 스위스의 라우터브루넨에서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탈리아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밤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에 도착해서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라우터브루넨으로 향했다. 내가 라우터브루넨으로 가려고 한 이유는 스위스 알프스 산의 융프라우요흐를 보고 싶어서 그 중간 지점의 어느 작은 마을을 선택한 것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우연히 만나서 친하게 된 독일인 친구 두 명에게 받은 라우터브루넨의 어느 산장의 주소와 전화번호는 나에게 큰 보물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산장에 도착한 나는 그곳 주인을 찾아보았으나 주인이 보이지 않아서 한동안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보았는데 짙은 파란색 물감을 색칠해 놓은 듯한 하늘과 그 파란색과 대비되는 하얀색의 구름들이 높은 산봉우리에 걸쳐져 있었고 산 아래로는 벽돌색의 지붕을 한 집들이 조금씩 무리 지어 있었다. 그 집들 사이로 선명한 초록색 잎의 나무들과 작은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것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에 가만히 집중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멈춘듯한 그 공간의 느낌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잘 알 수 없었던 그 찰나의 순간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여인이 나에게 걸어왔다. 그녀는 금발과 은발이 적당히 섞여있는 머리를 하고 있었고 마른 몸매에 발목까지 오는 짙은 밤색의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녀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안녕하세요? 숙소를 찾고 있나요?"라고 말했다. 나도 그녀에게 웃으면서 숙소를 원한다고 말을 하고 그녀의 안내를 받으면서 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산장은 스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층 집이었고 독일과 집 짓는 건축양식이 비슷하게 보였다. 벽에 짙은 갈색의 나무를 사선모양으로 무늬가 들어가 있었으며 3층에는 발코니가 있는 다락방이 보였다.



그녀는 그런 두 개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한 채를 나처럼 돈이 부족한 배낭여행자들을 위해 아주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서 내가 거주할 방과 거실 그리고 집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이미 그곳에 와있는 다른 여행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큰 방이 3개가 있었고 각 방마다 2층 침대가 4개 정도 들어가 있었다. 방의 크기는 매우 컸고 창문이 크게 있어서 방안으로 스위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실과 부엌 그리고 3개의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구조였다. 집안의 모두를 남녀가 함께 사용하지만 방은 남녀 구분이 되어있었다. 이미 그곳에 유럽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아이들과 홍콩에서 온 몇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하게 어울리게 되었다.



나는 짐 정리를 마치고 개운하게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마을 산책에 나섰다. 나는 마을 주변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오면 그곳에 앉아서 풍경을 구경하거나 또는 뭔가를 긁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는 마을 곳곳을 느리게 구경하고 있었다.



풀들이 영롱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고 들풀도 너무나 예뻐서 나는 조용히 카메라에 그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내가 여행하던 시절은 동양인을 유럽에서 잘 볼 수 없을 때였고 특히 스위스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보통 동양인들은 큰 도시에 머물러서 더욱이 스위스의 작은 마을인 라우터브루넨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여행지에서 보통 교회를 잘 방문하곤 한다. 성당과 교회는 그 마을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또한 유럽 사람들은 태어나면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하늘별로 떠날 때도 그곳에 있는 묘지에 묻히기에 나는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그곳이 어쩐지 마음이 가고 좋았다.




© mortaza_shahedphotography, 출처 Unsplash



변함없이 라우터브루넨에서도 하늘 높이 솟아있는 첨탑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나는 걸어갔다. 교회에 도착해서 주변을 돌아보니 여전히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예쁘게 공원처럼 정리되어 있는 교회의 묘지 안에 나는 걸어 들어갔다.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꽃들이 만발했고 묘지 안에 길은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고 내 뺨을 스쳐가는 바람은 따뜻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함이 나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나는 묘비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천천히 그곳을 걸어 다니다가 어린 나이에 하늘별로 여행을 떠난 한 소녀의 무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태어난 연도와 하늘별로 떠난 연도를 계산해 보니 그 소녀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낮은 사선으로 되어있는 묘비에는 소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의 문장이 남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와 가족들의 사진이 담겨있는 작은 액자들이 주위에 있어서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찬란한 햇살 같은 소녀의 미소로 인해 더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 잠시 서서 소녀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다시 그곳을 나와 조금 높은 곳으로 걸어가기로 나는 마음을 먹었다. 약간 높은 곳에서 마을을 둘러보고 싶어서 나는 부지런히 걸어 올라갔다. 한여름의 유럽은 매우 더운 날씨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라우터브루넨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약간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힘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올라간 후 그곳에 띄엄띄엄 있는 집들을 발견한 나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을의 풍경과 집들과 집안의 정원들을 함께 구경을 하였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고 마치 그곳 마을에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을 때 나는 어느 집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노부부를 발견하였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나는 "Guten Tag! 구텐 탁!"이라고 낮 인사를 그들에게 건네었다. 그 노부부는 나의 인사를 받아주고 나에게도 인사를 건네며 "시간이 괜찮으면 잠깐 우리와 차를 마실래요?"라고 나를 초대를 하였다. 어느 정도 걸어서 힘이 들었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 노부부의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은 종류를 알 수 없는 색색의 꽃들과 동글동글한 돌들로 예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나는 노부부가 앉아있는 티테이블로 향해서 작은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새들은 여전히 지저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부부 앞에 나는 앉았다. 그들은 나에게 차를 권했고 나는 감사하다고 말을 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꽃향이 나는 재스민차였다. 따뜻한 차를 마신 나는 다리 아픈 것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여기에 어떻게 여행을 온건 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탈리아를 여행 중에 독일인 친구 두 명을 만났고 그들과 신기하게도 계속 여행지가 겹쳐서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며 로마에서 그들은 폼페이로 내려가고 나는 스위스로 올라오면서 헤어질 때 그들이 나를 걱정하면서 예전에 여행할 때 들렸던 라우터브루넨이라는 마을과 산장을 나에게 소개를 했고 나는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짧게 설명을 하였다. 그 노부부는 나의 짧은 여행 이야기와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그 노부부는 나의 스케치 노트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나의 노트를 보여주었다. 별다를 거 없는 "긁적거림"이라고 설명을 하였고 그들은 변변치 않은 나의 그림을 칭찬해 주었다. 그러다가 좀 전에 교회에서 내가 어느 소녀의 무덤을 그렸던 그림 앞에서 그들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들은 나에게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물어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슬픔에 그 소녀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말을 했다. 그 노부부는 그 마을에서 태어나 그 마을에서 지금껏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나에게 그 소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소녀의 "안녕"을 빌어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던 노부부는 나의 다음 여행지를 궁금해했다. 나는 원래 일정을 정하지 않고 여행을 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조금 오래 머무른다고 말을 했고 그 부부는 나에게 이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에 내가 괜찮으면 이렇게 자신들의 집에 와서 차를 마시고 가도 좋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 후로 나는 라우터브루넨에 머무르는 동안에 종종 그 노부부의 집을 방문했다. 내가 언제 지나 갈지도 모르는 노부부는 신기하게도 내가 걸어 다니는 그 시간에 매번 정원에 나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부부와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셨다. 나는 그들로부터 라우터브루넨에서 꼭 보고 가야 하는 마을 사람들만 아는 "비밀의 동굴"도 소개받아서 다녀왔다. 그 동굴은 다른 반대쪽 입구로 들어가면 동굴 끝에서 라우터브루넨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나의 시선 앞에 폭포가 무지개 빛을 머금은 영롱한 물방울을 달고있는 실크커튼처럼 내려와서 신비한 느낌으로 마을이 보이는 곳이었다. 노부부는 마을 사람들만 아는곳이라며 나에게 소개해 주어서 나는 기쁘게 그곳을 다녀왔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외롭지 않았고 라우터브루넨에서도 "노부부"와 친구가 되었다.



내가 라우터브루넨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에 나는 노부부에게 저녁식사를 초대받았고 그들이 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감사히 먹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사 온 그림엽서 몇 장을 선물로 주었다.



내가 라우터브루넨을 떠나기 전  노부부를 다시 찾았고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들에게 "건강"을 빌어주었고 그들은 나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내가 독일로 돌아온 후 필름을 인화해서 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주었다.


스위스의 어느 작은 마을인 라우터브루넨이 나에게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가 나와 나이를 초월한 친구인  노부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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