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까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이 될지 궁금해졌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아이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게 되고 하나의 인격체가 되기 때문에 부모도 아이 앞에서 어떤 의미로는 평가를 받게 된다. 문득 딸에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진 나는 아이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우리 딸이 생각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이니?" 라고 물었다.
"엄마는 행복하게 꿈꾸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요." 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니?"
"엄마는 항상 엄마꿈을 나에게 말을 해줘요.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매일 한 발짝씩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요!"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아이는 평소에 엄마는 엄마꿈을 꾸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을 한다. 아이의 친구들은 부모님이 자신의 꿈이 없이 "우리 00가 잘 되는 것이 엄마꿈이야" 라고 말을 해서 부담이 된다는 말을 했다고 나에게 전해 주었다. 아이는 자신의 꿈과 엄마의 꿈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좋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의 꿈에 관심이 있고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항상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또 내 관심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집중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나는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도록 배려해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는 첫 돌이 되기 전이였고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웹디자인 작업을 했다.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길 수가 없었고 내가 오롯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었다. 그렇다고 회사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재택근무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면서 점심밥 먹을 시간조차 못 가지고 비스킷을 입에 물고 아이를 품에 안은채 웹디자인 작업을 했던 그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얼마 전 싸이월드를 폐쇄한다는 사실은 알게 된 나는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그곳에 올려놓은 것이 기억이 나서 부랴부랴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아이의 사진을 다운로드 해 놓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사이트에 방문한 나는 내가 그곳에 일기 비슷하게 하루의 심정과 나의 꿈에 대해 기록을 해놓은 것을 보고 깜작 놀란적이 있었다. 그렇게 힘든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하였다.
"엄마가 꿈을 꾸는 것이 우리 딸 눈에 어떻게 보이는데?"
"매일 엄마는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딸이 엄마가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구나"
"그렇죠 엄마가 집중해서 뭔가를 할 땐 밥 먹는 시간도 놓쳐서 내가 늘 배가 고파지잖아요." 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나는 항상 어떤 일에 집중을 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버릇이 있다. 그건 세상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분리된다고 보면 된다. 배고픈 것도 잊은 채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집중을 하기에 종종 아이에게 밥을 제때 안 줘서 아이의 원망을 듣곤 한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중학생인 아이에게 밥 먹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겠지만 나도 변명을 하자면 한번 집중한 일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이의 식사를 챙겨주고 내 일에 다시 집중하기에는 그 일이 번거롭기에 나는 내가 하던 글쓰기나 긁적이는 것이 어느 정도 마친 후에 아이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그거에 대해 아이가 평소에 불만이 있었는지 아이는 나의 질문에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피력하였다.
나는 다시 아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우리 딸이 생각하는 엄마는 무슨 색깔이니?"
"엄마는 빨간색과 노란색이 분리되어 선명하게 섞여 있어요. 그 색깔이 열정적이면서도 밝아요.".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를 보면 어떤 꽃이 생각나니?"라고 나는 다시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엄마는 노랑 해바라기와 빨간 튤립 꽃이 생각나요. 밝은 느낌의 노랑 해바라기와 열정적인 빨간 튤립 꽃이 엄마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지금 중학생인 딸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위와 같은 질문을 해보았고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는 아이가 엄마는 본인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며 열정적으로 엄마의 삶을 살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지구별 여행을 마치는 그때 내 딸이 나를 지금처럼 기억해 주면 좋겠다.
엄마라는 단어가 아이를 위해 양보하거나 희생만 하지 않고 본인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간 한 사람으로 슬프지 않으며 기쁘고 행복하게 기억되면 좋겠다.
아이가 그런 나를 기억하면서 엄마는 저 하늘에서도 정말 잘 지낼 거라고 믿고 내 아이도 지구별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