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라하의 별 Jan 07. 2021

50원과 500원의 차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지구별 여행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조금 엉뚱한 면이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전교조에 가입된 선생님들이 학교를 떠나게 되고 그 빈자리를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선생님들이 채웠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 후 선생님들과 인사를 할 때 선생님들의 나이가 남자 선생님들은 27~28살 여자 선생님들은 25살이었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붙어서 바로 온 선생들로 학교 선생님의 구성이 대부분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학교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젊었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어느 정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젊은 선생님들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나 역시 조금은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그 적응이 된 나의 행동이 조금 엉뚱한 면으로 나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회의 시간에 반 아이들이 빈번하게 지각을 하는 일이 마음 쓰였던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지각을 하면 벌금을 내는 안건을 제시하였다. 우리 반이 지각을 많이 해서 조금 안 좋은 소리를 들었는지 보통은 그냥 웃어넘기는 선생님이 그날따라 단호한 모습을 보여서 우리는 어리둥절하였다. 선생님 설명은 벌금을 부과해야 우리가 벌금을 내기 싫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서 학교에 오게 될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반 아이들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응대를 하였고 선생님은 우리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칠판에 지각하는 사람들에게 벌금 부과라는 문장을 쓰고 우리들을 향해 멋쩍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웃어 보였다.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벌금 부과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것이었고 우리에게는 벌금의 액수가 중요한 안건이 되었다. 학생들은 용돈을 받아서 사용하기에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액수를 처음부터 300원, 500원을 제시하였다. 1회 벌금에 그 액수면 금방 큰돈이 될 거라는 걸 우리들은 짐작하고 "안돼요!" 라는 말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지각해서 혼나는 것도 서러운데 벌금까지 부과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벌금 액수를 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최소 단위를 차지해야 했고 그 변론이 매우 중요했다.



아이들이 평소 책을 잘 들고 다니고 가끔 어떤 상황에서는 조목조목 말을 잘하는 나에게 시선을 보냈고 나는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학생들은 용돈을 받아 사용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상황과 물론 지각을 하면 안 되지만 자주 지각을 하게 되면 쌓이게 되는 액수가 부담이 되어서 결국 벌금을 못 내는 상황도 발생을 하니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소 금액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 액수는 "50원" 이라고 내가 말을 하니 선생님은 액수가 너무 적어서 안된다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벌금의 액수보다 우리가 낼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중요하다고 말을 했고 민주주의 회의임을 강조하고 다수결에 붙여서 선생님 혼자만 반대하고 학생들은 모조리 찬성하는 안건으로 통과가 되었다. 결국 학생들이 지각을 하면 벌금 50원이 부과되게 된 것이다.



회의가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을 때 나는 손을 들어 선생님께 말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을 해 보라고 하였고 나는 학생들이 지각에 대한 벌금을 내야 한다면 선생님께서도 지각을 할 때 벌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의 안건에 환호성을 질렀다. 내 안건에 볼이 살짝 발그레 해진 선생님은 머뭇거리면서 지각에 대한 벌금을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을 하였다. 선생님은 학생과 같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나는 다시 학생과 선생님은 동일한 사람이고 선생님은 우리보다 "어른" 이므로 모범으로 보여야 한다고 나는 "어른의 무게" 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결국 선생님도 지각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정해졌고 벌금의 액수가 중요해졌을 때 나는 선생님은 매달 급여를 우리가 받는 용돈과 비교 안 되게 받고 있으니 1회 지각할 때마다 벌금 "500원" 을 내야 한다고 말을 하였다. 내 이야기에 그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안건 역시 선생님 혼자 반대하고 나머지 학생들의 전원 찬성으로 통과가 되었다. 결국 선생님이 지각을 하면 벌금 500원 부과되게 된 것이다.



담임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은 평소 친구처럼 친하게 잘 지냈다. 젊은 나이의 선생님은 사춘기 여학생들의 감정 기복도 잘 이해를 해 주었다. 우리는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서 혼을 내면 울음을 터트리는 나이였기에 선생님은 우리를 잘 다독여 주며 어쩌면 여동생한테 하는 것보다도 더 참아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선생님에게 처음 제자라서 더 의미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새내기 선생님은 우리에게 적응을 해야했고 우리도 대학 졸업 후 선생님이 되어 오신 선생님께 적응하면서 서로 추억의 시간을 쌓아가는 조금은 일반적인 고등학교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지각을 하면 벌금 50원을 내고 담임선생님은 벌금 500원을 내야 한다는 것도 무난하게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아침마다 교문에서 달리기는 시작 되었다.



나는 워낙 달리기를 잘 못해서 학교에 일찍 가 있는 편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였지만 아침부터 온 가족이 나를 깨워 학교 보내는 일에 매달려서 나는 지각을 하지 않고 무사히 이른 시간에 교실 안에 있을 수 있었다. 교실 창문에서 운동장 쪽으로 학급회의 시간에 정한 지각 마감이 되는 시간쯤 바라보면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뛰는 모습이 종종 보이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뛰는지 반 아이들 표정과 선생님 표정에서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있어서 나는 이해가 잘 안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담임 선생님도 학급 친구들과 함께 아침마다 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벌금 500원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우리 반 벌금 저금통은 계속 무거워졌다.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저금통이 꽉 차서 우리는 학급회의 시간에 그 저금통을 개봉하였다. 그 당시에 상당한 돈이 나왔는데 500원짜리 동전의 양이 많았던 것을 보면 담임선생님이 벌금을 낸 적이 그만큼 빈번하였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떡을 맞춰서 나눠 먹기로 결정하였다. 학급 친구 중에 부모님께서 시장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있다고 해 그 아이에게 떡 맞추는 것을 맡겼고 떡이 나온 날 교무실 선생님들께 떡을 다 돌리고 우리 반 아이들도 잔칫집 분위기를 내면서 맛있게 그 떡을 먹었다. 교무실 선생님들은 무슨 떡이냐며 매우 궁금해했고 떡을 돌리는 반 아이들이 지각 벌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담임선생님이 제일 많이 내셨다는 말도 잊지 않고 말했다고 학급 친구들에게 알려주어서 우리는 행복하게 웃으면서 떡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생과 선생님의 차이를 벌금의 액수로 받아들여주고 학생과 함께 아침마다 교문에서 달리기를 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끔 생각이 난다. 선생님의 권위로 학생에게만 지각하지 말라는 의미로 벌금을 부과해도 되었을 텐데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종종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나에게 멋지게 기억되는 이유는 학생들의 마음을 존중해 준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인 줄 알았던 여행이 혼자가 아니었어_볼로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