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나는 손잡이만 열면 쏟아내는 수도꼭지다. 일부러 상영관 맨 앞 왼쪽 구석으로 내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옆자리에 앉히고 음료와 팝콘을 넉넉히 챙겨주었다. 아직 어린 막내를 위해 첫째에게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막내 눈을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나는 나만 챙기면 되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는 내내 나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한참을 올라가도록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런 나를 뻔히 아는 것은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상영관을 나서자마자 녀석이 내 눈을 보고 다가왔다. 아기를 어르듯 팔을 뻗더니 어깨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기대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고, 급기야 극장 로비에서 오열을 하고 말았다.
감동적인 포옹 씬이 연출되던 그 순간, 남편은 어디 있었냐고? 왜 이렇게 많이 우냐며 이미 저만치 도망가 버린 후였다.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울고 싶었지만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는지라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코를 훌쩍이며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차에 올라탔다. 퉁퉁 부은 눈으로 조수석에 앉아, 뒷자리의 초등 4학년 막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막내야, 영화에 나온 단종이 누군지 알겠어?”
쌍둥이는 물론 막내도 재미있었다고 했기에 나는 아주 조금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는 늘 그렇듯 쉽게 무너진다.
“칼부림하던 아저씨 아니에요? “
”아니, 그분은 한명회 역이고.”
“그럼 수염 나고 잘생긴 아저씨 아니에요?”
“그 사람도 아니야. 그 사람은 금성대군 역이야.”
“아하! 그럼 서산대군이죠?”
대체 서산대군은 어디서 나온 걸까. 노산군과 대군을 절묘하게 섞어버린 기상천외한 오답이었다. 영화 내내 흘렸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럴 것을 예상하고 극장에 오기 전, 단종 관련 역사 영상물까지 챙겨 보여주었건만. 택도 없었나 보다.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세 아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달랐다. 무서운 장면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동생의 눈을 정성껏 가려주던 첫째의 다정함, 오열하는 엄마를 창피해하기는커녕 위로할 줄 아는 둘째의 깊은 마음, 그리고 낯선 역사적 호칭들을 뒤섞어 ‘서산대군 ‘을 창조해 내는 막내의 엉뚱한 창의력까지. 아이들은 저마다의 세상에서 각자의 주인공을 만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각자의 주인공은 달랐다.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