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이들 건강 문제로 속앓이를 많이 했다. 성장 호르몬 치료를 받고 있던 중에 심해진 척추측만증 때문이었다. 남편이 예리하게도 아이들 변화를 눈치챘다. 동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첫째는 정말 3개월 만에 10도가량이 더 휘어 있었다. 둘째 셋째도 조금씩 나빠졌다. 너무 놀라서 2차 병원 예약을 당겨 잡았다. 그럴 리 없다 하시던 교수님도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고 약간 당황하셨다. 혹시나 했던 나도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내 얼굴을 살피던 첫째의 입꼬리도 내려갔다.
방법이 없으니 척추보조기를 잘 차고 바른 자세로 생활하라는 말만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섰다. 잠시 엄마 눈치를 살피던 아이들은 금세 고삐가 풀려 재잘거렸다. 제 몸 상태는 뒷전이고 학교를 빠지고 병원에 온 것만 신났다. 급기야 수다를 떨다 서로 몸을 돌리고 까불다 싸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른 자세로 앉아야지 뭐 하는 거야! 지금 엄마 속상한 거 안 보이니? 엄마 몸이야? 너희 몸이고 너희 건강인데 그렇게 생각도 없이 웃고 떠들고 싶어?"
아이들은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달래줄 마음은 들지 않아 바로 학교에 내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청소기를 돌리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반듯한 허리로도 무겁기만 한 삶 아니던가. 청소기를 내려놓고는 걸레질을 박박 힘주어했다. 한바탕 땀을 빼고 나니 그제야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철이 없다 해도 분명 걱정은 되었을 텐데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한 것 같았다. 화는 찰나이고 미안함은 오래간다. 그것이 엄마의 책임감일 것이다. 아이들이 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운동 열심히 하자고 다독여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현관을 박차고 들어와 가방을 바닥에 시원하게 메다꽂았다. 누가 키웠나 정말 장한 대한의 딸들이다. 쉴 새 없이 재잘대며 식탁에 와서 기분 좋게 간식을 먹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아까 속상했지? 아까 엄마가 너무 속상하고 슬퍼서 너희들에게 심하게 말한 거 같아 미안해. 엄마의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희들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 앞으로 엄마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줘. 엄마도 조심할게."
열심히 입을 움직이던 첫째가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앞으로는 슬픔의 감정에서 벗어나 조금 안정되신 상태에서 말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까 엄마가 너무 심한 거 같아요."
'엄마 괜찮아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같은 대답을 기대했던 나는 너무도 당돌한 아이의 답변에 은근 부아가 났다.
'요놈 봐라.'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 아니니?"
"왜요. 엄마. 엄마가 요구할 것은 요구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럼 네 방 좀 치워줄래? 바지 좀 앞뒤 구분하고 똑바로 입어줄래? 집에 오자마자 물통 바로 꺼내줄래? 일등 해줄래? 책상 어지르지 말아 줄래? 신발 똑바로 벗어줄래? 빨래는 빨래바구니에 제대로 넣어줄래? 엄마 끝도 없이 더 할 수 있는데 계속할까?"
입을 쩍 벌린 채 눈알만 굴리던 둘째가 다급히 외쳤다.
"야. 엄마한테 빨리 잘못했다고 해."
눈치는 없지만 말은 잘 듣는 첫째가 말했다.
"어머니.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에게 화풀이하셔도 됩니다. 마구 소리쳐주세요."
걸레질보다 시원한 건 역시 잔소리였다.
아이를 바로 세우는 일에는, 어쩌면 잔소리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