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운 날

by 주원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화가 났는지 눈발이 좌로 우로 아래로 위로 마구 흩날렸다. 지루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차마 밖에 나가 놀라는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막내가 나섰다.


“언니야. 우리 베이킹하자.”


아이들 눈이 반짝였다. 평소 베이킹이 취미인 막내가 주도했고 언니들은 보조하기로 했다. 막내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필요한 재료들을 읊었다. 첫째는 옆에서 착실히 받아 적었다. 이럴 때 보면 누가 첫째이고 막내인지 모르겠다. 타고난 기질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끔 보면 첫째가 유난히 맑았다. 공부도 잘하고 속도 깊은데 가끔 ‘네 나이가 몇이니?'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순수함이 지나쳐 걱정이 된달까?


“마시멜로우, 코코아 파우더, 전지분유 등등”


원래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막내는 얼른 겉옷을 챙기며 언니에게 장 보러 가자고 했다. 엉덩이가 소파에 붙어 있는 둘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가만히 앉아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산이리라. 어떻게 설득을 해서 내보내나 고민하던 찰나 첫째가 말했다.


“막내야. 내가 돈이 절실해서 그러는데 내가 다녀오면 안 될까?”

“왜? 그러면 돈이 생겨?”

“언니 카드로 계산하면 행운복권도 긁을 수 있고 캐시백도 들어오니까.”

“그래. 그럼 언니가 다녀와.”


첫째가 신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행운복권? 캐시백? 낯선 단어에 호기심이 들기도 했고 엉덩이 무겁기로는 둘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첫째가 자진해서 나간다고 하니 이상도 했다.


“얘들아. 행운복권이 뭐야?”

“아. 그거 카드 쓰면 복권이 랜덤으로 나오는데 긁으면 1원에서 100원도 나와요.”

“그럼 캐시백은 뭐야?”

“카드 쓰면 카드회사에서 돈 돌려주는 거예요.”

“그건 얼마나 나오는데?”

“10원 아니면 50원이요." 막내가 신이 나서 알은체를 했다.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기가 차서 물었다.


“첫째는 왜 돈이 절실하대?”

“만화책 사야 해서 10만 원쯤 필요하대요. 대체 언제 모은다는 건지." 이번에는 둘째가 혀를 차며 말했다.

“……“


재료비는 엄마에게 청구하면 돌려주니 제가 심부름을 하고 포인트를 챙기겠다는 거였다.


십여 분 후 들어온 첫째의 얼굴이 장미꽃잎 같았다. 칼바람에 붉게 물든 손끝에는 검은 봉지가 달랑 매달려있었다.


“첫째야. 행운복권이랑 캐시백 해서 얼마 벌었어?”


첫째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48원이요!”


나는 말을 잊은 채, 10만 원이 첫째에게 얼마나 큰돈인지 헤아려보았다.


돈의 크기보다 더 큰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아이의 미소 앞에서,

내가 하려던 말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manseok_kim-coin-1117993_1280.jpg 사진출처: 모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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