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의 습격

by 주원


중학생 조카아이가 놀러 왔다. 딱 한 발 앞서 새 문명을 소개해주는 한 살 차이 언니. 방물장수처럼 드물게 방문할 때마다 우리 아이들이 버선발로 마중 나가는 언니였다. 이번 방문도 역시 신문물과 함께 왔다. 오른손에 아주 작은 꼬리빗이 하나 쥐여있었는데, 용도는 뻔했다. 조카아이는 수시로 빗을 꺼내 앞머리를 빗었다. 빗은 쉬는 시간에 잠시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가 있다가 오분 십분 뒤에 다시 불려 나와 제 임무를 해냈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지난해 실내 놀이 공원에 온 가족이 놀러 간 적이 있다. 어트랙션 하나를 타기 위해서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30분 이상 기다리는 일이 예사였다. 고되고 지루한 중간중간 남편과 나의 눈을 사로잡는 일이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머리 앞쪽에 핑크색 헤어롤이 하나씩 올라가 있는 거다. 헤어롤이 안 올라가 있는 아이들은 열이면 여덟, 오른손에 꼬리빗이 쥐어져 있었다. 수시로 앞발을 비비는 파리처럼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제 더듬이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와 내 남편이 놀랐던 것은 헤어롤 자체가 아니라 왜 헤어롤을 하루 종일 하고 있냐는 거였다. 머리가 손질된 후에는 당연히 헤어롤을 빼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이렇게 말고 있다 남자친구가 나타나면 빼는 건가? 했지만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아이들 머리에도 여전히 헤어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로서 확실해졌다. 헤어롤의 용도는 잠시 머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가설 1, 헤어롤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인가?

가설 2, 헤어롤은 이제 스마트폰처럼 여자아이들과 한 몸인가?

가설 3, 헤어롤을 앞머리에 수납하는 건가?


눈앞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후에도 오래 그 이유를 고민했지만, 이미 새치 가득한 중년의 아줌마가 된 나는 여자아이들 속내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예전에 유행했던 '공주병'처럼 '앞머리 병'이라는 신종 병이 생긴 건 아닐까 말하며 웃었다.


그랬는데! 조카가 앞머리를 자르고 꼬리빗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비밀을 공유한 아이들처럼 키득거렸다. 그리고 며칠 후 둘째가 말했다.


“엄마. 저 앞머리 잘라주세요.”

“왜?”

“그냥 한 번 잘라보고 싶어요.”

“너 그거 엄청 귀찮아. 매일 앞머리 빗어야 하고 잘못하면 앞머리 내린 쪽에 여드름도 나.”

“그래도 한 번 잘라보고 싶어요.”

“그럼 생각 좀 해보자.” 했었다.


나는 며칠 새 까맣게 잊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미용실 예약을 했냐고 내게 물었다. 당황스러워 아직 안 했다고 했더니 얼른 해달라며 채근했다. 아니 여태까지 앞머리는커녕 뒷머리도 관심 없던 네가? 누가 뭐래도 서당 도령처럼 가르마를 타고 365일 검정 고무줄로 질끈 묶고 다니던 아이였다. 그러던 아이가 미용실을 예약해 달라며 내 확답을 기다리고 서있었다.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다니던 미용실에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아이는 그럼 다른데라도 전화해 달라고 했다. 보통 의지가 아니었다. 다른 미용실에 전화를 했다. 조금 더 비쌌지만 바로 예약이 되었다. 그제야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자리를 떴다.


이틀 후 오전에 둘째와 막내가 머리를 자르고 왔다. 원래 앞머리가 있던 막내는 조금 다듬어서 깔끔해졌고, 둘째는 처음 생긴 앞머리에 본인도 어색해했지만 제법 잘 어울렸다. 한두 시간이 지날 때까지 아이는 매우 어색하게 앞머리를 살짝살짝 건들기만 했다. 그래. 원래 없던 것이니 어색할만했다. 한 두어 시간이 지나자 벌써 거울을 십만 번쯤 보는 것 같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이 오기 전에 아이 오른손에 꼬리빗이 들려있었다. 어디에 박혀있던 건지도 모를 유물이었다. 퇴근한 남편을 구석으로 끌고 가 말했다.


“여보. 큰일 났어.”

“왜?"

“둘째가 앞머리 병이 났어. 계속 거울보고 머리 빗어.”

“그래? 정말 사춘기는 사춘기인가 보다. “

“괜찮겠지?”

“그럼. 우리 둘째는 그때 그 여자아이들처럼 헤어롤 말고 남자친구 만나러 가지는 않을 거야.”


우리 부부는 아이의 변화에 약간 놀랐지만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이라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러 주방으로 나서던 나는 깜짝 놀랐다. 둘째 아이 머리 위에 ‘그것’이 올라가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엄마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제 손을 머리에 올려 연핑크색 플라스틱 물건을 살짝 만졌다. 그 만족스러운 표정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앞머리의 존재가 만족스러운 건지 앞머리를 헤어롤로 말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운 건지는 묻지 않았다. 나도 우리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헤어롤 하나로 나는 아이의 어제와 오늘이 하늘과 땅만큼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애써 놀란 티를 감추고 씩 웃어주었다. 평가도 비난도 아이가 원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관점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우리 둘째를 관찰하다 보면 내가 전에 세웠던 헤어롤 가설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전전두엽의 혼란을 겪는 아이를 전두엽의 기능이 완성된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이마 위에 헤어롤을 얹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 아이가 내게서 얼마만큼 멀어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보았다. 언제까지 내 잠옷 냄새를 맡아줄까? 생각도 하면서.


다음날 아침, 주방으로 향하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열한 살짜리 막내의 머리에도 그 '혼란스러운 것'이 올라가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난데없는 헤어롤의 습격에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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