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숙제하기 싫어!" 소리 지르며 쌍둥이 중 첫째가 운다. 징징거리는 울음이 아니라 감정을 쥐어짜는 울음이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2년 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둘째였고 지금은 첫째라는 것만 빼면 그때와 너무도 똑같다.
6살이었던 둘째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유치원 문 앞에서 울기 시작한 지 일이 주가량이 흐른 때였다. 아기 때부터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도 크게 악을 쓰며 울던 쌍둥이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면서 드는 핑계가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특별한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그런데 집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숙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숙제하기 싫은 거야 너무 당연한 일인데 이상했던 것은 숙제를 안 하겠다고 외치는 둘째의 눈빛이었다. 6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의가 가득 차 있어 나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이 아이를 화나게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 하원 길에 유치원 선생님께서 먼저 말을 꺼내셨다. 점심시간에 아이가 느닷없이 "모두 나만 미워해."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친구들도 선생님도 모두 놀랐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지는 못했고 아이를 다독여 물으니 모두 나만 미워한다는 말만 반복하더라고 했다. 그런 다음 매우 조심스럽게 물으신 말이 놀라웠다. 둘째가 숙제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혹시 과도하게 학습을 시키시는 건 아니냐는 거다. 물론 방문학습지 선생님도 오시고 영어 공부방에도 다니고 있었다. 내가 교육열이 있는 엄마이기도 했지만 쌍둥이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방문수업도 서로 먼저 받겠다고 싸우곤 해서 한 아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다른 아이는 문고리에 매달려 문에 귀를 댄 채로 차례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공부방도 매일 선생님이 간식을 주신다며 즐겁게 다녔다. 게다가 숙제라고 할 만한 학습 양은 일주일에 30분 정도 많아야 1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너무도 이상했다.
같은 반에서 생활하고 있는 쌍둥이 첫째에게 묻고, 둘째가 울면서 던지는 말 몇 마디에 엄마의 촉을 더해 맞춰간 퍼즐들은 이랬다. 6세에 유치원에 들어간 쌍둥이는 처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반에서 제일 얌전한 친구 둘과 친해져 넷이 놀았는데, 어느 날부턴가가 그 얌전했던 친구들이 쌍둥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더란다. 역할놀이를 할 때도 좋은 역할은 자기들이 맡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역할만 주었다고. 심지어 친구들이 둘째는 놀이에 끼워주지 않고 첫째만 끼워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 둘째는 다른 친구랑 놀거나 책을 읽었는데, 다른 친구랑 노는 모습을 보면 왜 다른 친구랑 놀았냐며 그러면 이제 너랑 안 놀아준다고 했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선생님도 여기까지는 아무런 이상을 못 느끼셨다고 하셨다. 워낙 얌전한 아이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눈에 뜨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둘째는 그렇게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유치원 생활에 불만이 쌓이자 둘째는 집에서도 예민하게 굴고 신경질을 자주 냈다. 세 아이 육아에 눌 지쳐있던 나는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릴 생각은 못하고 아이를 훈육하거나 다그쳤다. 아이는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엄마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좌절되자 아이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그게 숙제 거부였던 것 같다. 엄마가 하라고 하고 본인은 하기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
학습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거의 그만두었다. 놀이터에 더 자주 나가고 책을 많이 읽어줬다. 판단을 최대한 억제하고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려고 노력했다. 말로는 쉽지만 자기 감정을 주체 못 하는 아이들의 분노와 짜증을 맨몸으로 받아주는 것은 힘에 부쳤다. 아이는 끝도 없이 내 사랑을 시험했다.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지 얼마만큼 받아줘야 하는지를 하루 종일 고민하며 상처 입은 둘째를 얼렀다. 둘째가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첫째와 셋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를 곳간에 가득 먹을 것을 숨기고 있는 내어주지 않는 사람 취급하며 어서 당장 내놓으라 호통을 쳤다. 외줄 타기 하듯 아이 셋을 데리고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의 눈에 담긴 적의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악에 받쳐 울며 엄마를 원망하는 아이를 보며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리상담센터에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쌍둥이 둘의 심리검사를 했다. 결과는 허무했다. 문제 행동을 보이긴 하지만 정상 범주 안에 있고 특정 시기에 보이는 행동일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했다. 아이가 힘들다고, 자신은 행복하지 않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몸부림치는데 엄마인 나는 무력했고 전문가는 치료가 필요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었다. 상담센터 소장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엄마가 잘하고 계신 거라고 아이가 셋이니 사랑은 줘도 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내 눈앞에 와있는 애가 엄마 사랑이 절박한 아이니 그 아이부터 안아주시면 된다고.
살얼음판 디디듯 둘째를 돌본 지 두 달쯤 지났을까? 변화가 느껴졌다. 눈에 들었던 불길이 사라졌고 웃음이 늘었다. 서서히 찾아온 변화였겠지만 나는 마지막 한 걸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이제야 비로소 내 아이가 나에게 돌아온 것을. 나는 아이를 부서져라 안았다.
두 달간의 일이었지만 내겐 늘 가슴 한 편에 문신처럼 박힌 교훈이었다. 내 몸 바쳐 사랑했다 생각해도 아이에겐 부족할 수 있다는 것. 육체적, 정신적 학대 없이도 아이는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 이 여리고 작은 아이가 느꼈을 마음의 고통을 되새기며, 다시는 내 아이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또 놓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작은 똑같이 친구 문제였다. 둥이 중 둘째가 다른 친구와 친해지면서 첫째가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쌍둥이인데 하나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자신은 그렇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내가 늦었다.
첫째 아이 눈에 원망이 들어차고 아래턱은 분노를 못 이겨 덜덜 떨렸다. 화를 못 참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고, 누가 있건 어디에 있건 분간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울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무례한 행동도 거침없이 했다.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배려심 많아 엄마를 흐뭇하게 했던 아이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감정에 못 이겨 미운 말을 내뱉고 거친 행동을 하고 나서 본인도 괴로워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바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최대한 아이를 자극할만한 상황은 피했다. 학원에 전화를 돌려 당분간 못 간다고 전했다. 한 번 겪어봤던 일이라 괜찮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때의 숨 막힐 듯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두려웠다. 상황이 닥치기도 전에 벌써 겁이 났고 아이가 분노 발작 전조 증상만 보여도 나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이 모든 것이 내 한 몸에 달려있다는 것이 버거웠다.
남편과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주 양육자인 내 몫이었다. 일주일에 두어 권씩 읽던 책을 덮었다. 모임도 줄였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 아이의 히스테리를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바깥활동을 줄이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뜨개질로 풀었다. 책을 읽을 때는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했지만, 뜨개질을 할 때는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책도 읽어줄 수 있었다.
학원을 쉬고 거부할 숙제가 없어지니 아이는 수시로 다른 트집을 잡아댔다. 엄마 아빠는 나만 미워한다느니 둘째와 셋째가 자기를 괴롭혔다느니 하며 자신이 이만큼 괴롭다는 뜻으로 아래턱을 떨며 울었다. 옆에서 보기에 괴로웠지만 태연한 척했다.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화나고 짜증 나는 감정 모두 이해한다 괜찮다 하지만 모든 말과 행동을 다 받아줄 수는 없다고 한계를 설정했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했다. 처음에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버릇없는 행동을 벌주라 했던 남편도 내 뜻에 따라줬다.
둘째보다 첫 째가 더 관계지향적인 편이라 반응이 조금 빨리 왔다. 2년 전 둘째는 대화 자체를 거부할 때가 많았는데 첫째는 보란 듯이 울었다. 아이는 소리 지르며 우는 자신의 행동을 과시했고 그런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왜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기분이 풀렸냐. 네가 기분이 풀리기를 기다렸다.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면 와라. 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 너를 지켜줄 거다.'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이렇다 할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아이가 학원에 다시 다니고 싶다고 했다. 원래 배움을 즐겼던 아이라 그런지 학원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여전히 숙제는 하기 싫다고 했다. 오늘은 숙제를 안 해도 좋지만 다음에도 숙제를 하지 않으면 학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수긍하고 학원에 갔다.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아이가 보내는 한 시간이 부디 즐겁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표정이 밝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니 아이의 마음이 또 바뀌었다. 숙제도 안 하고 학원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두말없이 알았다 하고 둘째만 데려다주겠다고 하는데 첫째가 혼자 있기 싫다며 따라나섰다. 학원 앞, 혹시나 싶어 첫 째에게 들어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첫째가 못 이기는 척 들어가겠다고 했다. 아이 둘을 학원에 올려 보내고 셋째와 학원 앞 놀이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기운 센 셋째랑 놀아주며 쌍둥이를 기다리는데 이상했다. 팔다리는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데 가슴이 간질간질한 게 꼭 소풍 기다리는 아이처럼 들떴다. 셋째가 더 예뻐 보였다. 워낙 거칠고 힘이 센 아이라 놀이터 끌려갈 때마다 소처럼 일하러 가는 기분이었는데, 이 아이랑 노는 게 이렇게 즐거웠나 싶게 웃으며 1시간을 보냈다. 너무 즐거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코 아래로 미끄러진 마스크를 잠시 고쳐 쓰는 사이에 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