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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주원

얼마 전 TV 드라마를 보는데 남자배우가 여자배우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다. 저 명함.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저것이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얼결에 취업을 했었다. 박봉이었으나 일이 편하고 복지가 좋아 다니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결혼하고 쌍둥이를 낳고 셋째를 임신하면서 자연스럽게 퇴사를 했다. 소중히 챙겨 나온 사원증은 아직도 내 서랍 안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말단 직원이었지만 매일 어떻게든 내 몫을 해내려고 노력했던, 젊은 내 얼굴이 어여쁘게 박혀있다. 나의 성실함을 내가 알았고 나는 내가 좋았다.


직업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내가 성취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조직에 몸담고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히 일었다. 집안일 육아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애들은 뭘 해줘도 울었다. '열심히 했다', '잘했다' 칭찬도 듣고 싶었고 돈도 벌고 싶었다.


일하고 싶은 나와 조금만 더 키우고 하라는 남편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10년이 지났다. 결국은 내가 졌다. 애들과 나를 위하는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속병을 얻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해졌고 밤에는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싫었다.


이 글은 내가 우울과 불안을 다독이는 방법을 깨우쳐가는 이야기다. 정신승리나 합리화가 될 수도 있다.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아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정답은 없다.


열심히 살고 싶은 한 사람의 투쟁기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열심히 잘 살아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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