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몇 수 앞을 내다보는가
해줄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일으켰다 다시 앉는다. 어릴 때야 우는 것 밖에 할 줄을 모르니 울려는 낌새만 보여도 다 해줬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뭘 해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자립이다.' 이 문장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서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립? 이게 어려운가? 때가 되면 알아서 다 하는 것 아닌가? 아니다. 알아서 하도록 배워야 한다. 아주 가끔 알아서 배우는 아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르쳐줘야 배운다. 그런데 이것을 가르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내게는 그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기까지 무한히 실패하는 과정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해주면 금방인 것을 아이들은 수억 년이 걸려 해낸다. 해내고 나면 또 거짓말처럼 흥미를 잃고 엄마가 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그때부터 다시 잔소리 전쟁이 시작된다.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우는 거다라는 만고의 진리를 이해시키는데만 십수 년이 걸린다.
둘째는 엄마의 역할이 언제까지 어디까지냐는데에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거다. 삼시세끼, 청소, 빨래에 대한 기준도 집집마다 다르고 남편이 다르고 엄마가 다르고 아이들도 머리통마다 다르다. 어떤 녀석은 밥만 차려줘도 엄마 최고라고 하고 어떤 녀석은 삼색 과일 깎아 바쳐도 씨 빼달라고 내친다. 그럼 엄마들은 고민에 빠진다. 이건 누가 할 일인가? 진정 아이의 자립을 위해서 안 해주는 건지 그냥 내가 귀찮아서 하기 싫은 건지 엄마도 헷갈린다. 프로주부에게도 아주 대단히 분별력을 요하는 일이다.
우리 집에는 물통을 미리 꺼내놓지 않으면 물통을 씻어주지 않는 규칙이 있다. 아침 먹기 전까지 전날 학교에 가져간 물통을 꺼내 놓으면 씻어서 새 물을 싸주고 그렇지 않으면 물을 싸주지 않는다. 지난봄까지 아이 셋 방을 다니며 물통을 꺼내 씻어 주다가 2학기부터 규칙을 만들었다. 그 정도는 아이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을 차려주고 난 후 물통 안 내놓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린다. 아차 싶은 아이들은 얼른 물통을 꺼내 싱크대에서 간단히 물을 부시고 알아서 싸간다. 하루는 꺼내놓기를 잊었던 막내가 스스로 물통을 씻어 싸갔다 오더니,
"엄마 물에서 세제 맛이 났어요." 했다.
세제를 조금만 쓰라고 하고 세척용 솔 사용법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꼭 물로 여러 번 헹궈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물통 세척이 까다롭다고 아이는 말했다. 나는 웃으며 미리 꺼내놓으면 그 수고를 덜 수 있다고 했다. 막내는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가르쳐서 안될 일은 없다.
깨달음을 얻은 줄 알았더니 다음날도 막내는 물통을 내놓지 않았다. 교육의 효과가 없는 걸까? 아니면 어제 배운 대로 물병을 씻어보고 싶은 걸까? 속으로 생각하는데 막내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물통을 꺼내 물을 싸서 가방에 챙기는 거다. 이유를 물으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엄마. 오늘 이렇게 여분의 물통에 물을 싸고 어제 먹은 물통을 지금 꺼내놓으면 돼요. 그럼 엄마가 씻어주실 거고, 내일은 오늘 엄마가 씻어놓은 물통을 챙기면 돼요. 그럼 저는 매일 물통만 바꾸어 싸가면 되는 거예요. 이해하셨어요?"
고수에게는 프로주부도 KO 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