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그리고 당신에게-
날이 차다. 겨울이야. 추운데 싫지 않네, 겨울이 겨울이라 좋고, 계절이 제때에 맞춰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 반가움까지 드네. 비정상적인 사회변화를 겪은 뒤라서 그런가 봐.
나는 비교적 평화롭게 사사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 요즘 나의 즐거움은 접영 발차기 연습이야. 물에 기대서 매끄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좋아. 내 몸으로 파도가 너울대는 모양을 흉내내면 그 노력을 가상하게 여긴 물살이 나를 앞으로 넘겨줘. 상체를 둥글게 위로 말았다가 펴면서 앞으로 밀고 나가면 다리가 물길을 따라 딸려와. 다리가 따라오는 사이 몸통이 수면에 가까워지면 다시 포물선을 그리며 물을 따라가고, 수면 가까이 따라 올라온 발을 톡 차서 추진력을 만들고 그걸 반복하면서 흘러가는 거야. '나는 돌고래다'라고 생각하면서. 강사님이 항상 말씀하시거든 '수영은 우아하게 하세요. 나는 돌고래다라고 생각하면서 우-아-하게'
2024년을 잘 정리해 보고 싶어. 경제적으로는 빵점인 한 해였지만 이것저것 경험하면서 나에 대해, 특히 내 몸에 대해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많았거든. 어디가 약한지, 어떻게 강화해 나가야 할지 그리고 내 생각보다 내 몸의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됐지. 그걸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겨두면 나중에 이런 감각을 다 잊어버렸을 때 꺼내보며 으쌰 할 수 있을 테니까. 올해 수영을 꾸준히 배우면서 음파 숨쉬기부터 시작해서 접영 발차기까지 할 수 있게 됐고, 달리기를 배우며 10km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고,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무너진 발 아치, 돌아간 무릎, 허벅지 안쪽 근육의 미약함, 허벅지 앞쪽 근육의 단축, 약한 코어 힘, 앞으로 내밀어진 갈비뼈(흉추), 항상 힘이 들어가 솟아있는 어깨, 정렬이 틀어진 골반과 척추를 감각으로 느끼게 됐지. 문제를 알면 해답을 찾을 수 있으니까 희망적이야. 당장 의지적으로 고쳐나가지 않더라도 항상 염두하고 있으면 때를 만났을 때 빨리 답을 찾아갈 수 있겠지.
신기한 게 내 몸에 대한 이해를 복합적인 상황에서 엉뚱하게 깨칠 때가 많았어. 달리기 수업을 하면서 선생님이 나더러 어깨에 힘을 빼라고 할 때,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 나는 힘을 뺀다고 뺐는데도 선생님이 아직도 상체에 힘을 많이 주고 있다는 거야. 달리기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몰랐어. 근데 그 뒤에 한국무용 수업을 갔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서 어깨에 힘을 빼고 팔을 양쪽으로 뻗어 보라고 하셨어. 근데 그때도 내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는다고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한 명씩 본인의 팔을 잡아보도록 하고 어깨, 팔의 힘을 다 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도록 하셨어. 그제야 알겠더라고. 타인의 팔에 두 팔을 올려둔다는 생각으로 온전히 기대듯이 힘을 다 빼야 하는 거였어. 그러고서 손 끝에만 힘을 준다는 생각으로 팔을 드니까 평소 때랑은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 그제야 왜 달리기 선생님께서 나더러 어깨에 힘을 빼라고 누차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됐어. 참 신기하지.
내 몸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 알게 된 지식이 비단 몸과 운동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거야. 내 생각, 가치관의 어느 구석은 내 어깨처럼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가 있을 거고, 너무 약해져 있어 단련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거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아주 엉뚱한 곳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현재 상황에 머물러 고민하기보다는 별개로 보이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풀려가는 문제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좀 느긋해지기도 했어. 운동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 몇 주 뒤에 일정이 여러 개 겹치게 되면 '어떻게 조정하지?' 하며 걱정하게 되잖아.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손쓰지 않아도 일부 일정이 취소되거나 변경돼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때가 있더라고. 그러니 멀리 있는 일에 조급해하면서 걱정을 당겨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 문제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짧고 간결하게 해결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 말은 참 쉽지?
그냥, 매일 나에게 충실하면 되는 것 같아
9월에 나와의 약속으로 시작한 매일 쓰기가 오늘로 100일이 되었어. 칭찬할 일이야. '나는 게으르다, 의지가 박약하다, 나태하다'라고 말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으려고. 내가 나를 너무 가혹하게 평가했어. 돌이켜보니 과거 어느 시기에는 누구보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내가 있더라고, 지금도 내가 나를 잘 돌보며 다른 사람한테 폐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고 말이야.
2024년에 배운 게 많아, 느낌상 키가 조금 큰 것도 같고,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서 좀 가뿐해진 것도 같고, 주머니는 한없이 가벼운데 마음 한편은 살짝 넉넉해진 거 같아. 곁에서 좋은 영향을 나눠준 사람들 덕분이야. 감사함을 아끼지 않고 말하고, 잊지 않고 표현해야지. 올해가 가기 전에 감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네. 서둘러야겠다.
더 길어지기 전에 이 편지의 끝맺음도 서두를 필요가 있겠어. 모쪼록 녹록지 않았던 2024년을 살아낸 나와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어. '애썼다고, 불안한 나를 데리고, 불확실한 매일을 살아가느라 수고가 많았다고' 남은 2024년 끝까지 평화롭고 평안하기를 바랄게.
100일 동안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