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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여든 셋

뽀송한 일요일

by 주원

해가 좋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잠은 깼지만 정신이 들지 않아 이불을 걷지 않고 가만 누워 한참 눈꺼풀만 껌뻑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반쯤 일으켰습니다. 침대에서 몸만 쏙 빼낼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 이불커버를 벗겨 들고 일어섰습니다.


이불빨래는 이번 주 내내 할 일 목록에 올려두었던 일입니다. '오늘은 날이 흐리니까, 시간이 너무 늦었어, 더 중요하고 급한 일부터 하는 게 맞지, 드라마가 끊을 수 없이 너무 재밌네' 각종 핑계들로 이번 주 마지막날까지 밀려온 것이지요.


핑계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샤워하고 밥 먹는 틈에 게으름이 스며들까봐 모자 푹 눌러쓰고 빨래할 이불만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코인빨래방 세탁기 3대 모두 빨래를 가득 담고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빨래를 대기 공간에 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온 김에 걸어서 10분~15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갔습니다. 월간지를 후루룩 넘겨 보고 그마저도 시들해져 서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책 4권을 골라 들고 나왔습니다. 빨래를 기다리며 읽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동네를 거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자꾸만 사람들 손에 들린 얼음 담은 음료수 컵에 눈길이 갔습니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빨래방에 가기 위해 건너왔던 횡단보도 앞에 다시 섰습니다. 카페는 저 건너편에 있었거든요. 얼음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세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는 발걸음은 사뭇 경쾌했습니다. 빨래방에 도착하니 제가 원했던 가장 큰 용량 세탁기가 비워져 있었습니다.


이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탁기 옆에 앉아 얼음 든 음료수를 마시며 책을 읽었습니다. 뽀송해진 이불을 집에 가져다 두고 내친김에 수영장도 다녀왔습니다. 말끔히 씻고 돌아와 향긋한 이불에 누우니 별땡땡 호텔 못지않습니다. 소소하다면 소소하지만 저에겐 참 보람차고 알찬 일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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