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 여든 일곱

하루하루가 별일

by 주원

오늘도 똑같은 하루, 별일 없이 보낸 하루 뭐 쓸 게 있나?무덤덤 백지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뭐라도 글감이 될만한 걸 찾아보고자 아침으로 거슬러가 간을 되짚으며 인상적인 장면을 찾아보았습니다.


하나. 내려야 할 지하철역에서 문이 닫힐 때 깨어나 한 정거장 더 갔다가 돌아옴

둘. 샌드위치 사러 간 빵집에서 서비스로 커피를 주심

셋. 점심에 간 식당의 밥 윤기가 차르르, 찰기가 쫀쫀한 것이 갓 지은 듯 맛이 좋았음

넷. 깍둑썰기한 수박 한 통, 멸치 볶음, 당근라페, 쌈 나물, 강된장을 나눔 받음

다섯. 농익어 파지가 된 복숭아를 한 바구니에 천 원 주고 삼


써놓으니 별일이 아닌 게 없습니다. 어제랑 지난주랑 같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무덤덤한 줄로 알았던 오늘의 감정은 당혹, 기쁨, 만족, 감사, 행복 사이를 다채롭게 오갔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 꼽은 인상적인 장면 다섯 개 중 네 개가 먹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저의 행복은 먹는 것 연관되어 있습니다.


톺아보면 날마다 별일고, 감정은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날의 둔감함과 예민함의 조합에 따라 별일이 특별해지기도 하고, 흐릿해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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