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가 성종 18년에 제주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1월 부친상을 당해 돌아오던 도중, 풍랑을 만나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 표착하여, 온갖 고난을 겪고 반년 만인 6월에 귀국하여 지은 '표해록'을 읽다가 “보통 사람의 감정은 오직 향하는 대로만 따라갈 뿐 깊이 살피려고 하지 않는데 이렇게 되면 반드시 한쪽으로 빠져서 올바로 修身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왜 떠올랐을까? 중국 황제 알현 때에도 상복을 벗지 않겠다 실랑이를 했다는 최부의 유교적인 신념이 예(禮)였을까? 효(孝)였을까? 여기저기 봇물이 터지고 있다. 이제는 부당한 명령과 불편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이유가 현실은 더 교묘해진다. 자신만의 우상(偶像)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괴물이 되었다. 그런데 다들 나는 괴물이 아니란다. 몹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