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빈낙도하리라 작정했지만 막상 가난하니 그게 안되네 마누라 한숨소리에 낯빛을 잃고 굶주리는 자식에게 엄한 교육 못하겠네 꽃과 나무 모두 다 생기를 잃고 책 읽어도 글을 써도 시들하지만 부잣집 담 밑에 쌓인 곡식들은 사람들 보기에 좋을 뿐이네"(탄빈/정약용)
청빈한 삶을 실천했던 다산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일이 '독서'임을 강조했지만 현실적인 불편함과 가족들의 고단한 삶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자책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근검(勤儉)이 비옥한 전답보다 훌륭하다
신신당부하는 다산의 음성이 들린다. '기승유사'의 줄거리를 읽다 보니 다산의 세심한 가계는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12살 때 종기와 부스럼에 떡진 머리칼을 곱게 빗겨 주며 고름을 닦아주었던 20살 된 서모와의 일화를 묘비명에 기록했던 다산의 인간애에 눈물이 베여 나왔다. 마음으로만 질투하고 시기하며 절제심을 잃지 않았던 다산의 욕망에 대한 인내심이 부럽기는 했는데 자식은 줄줄이 다산(多産)했다. 그래서 호(號)가 다산(茶山)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