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추격을 따돌린 주몽 일행은 현도군이 자리했던 졸본 주에 도착해 그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비류수 근처에 초막을 짓어 거처를 삼았다. 그리고 국호를 고구려로 정하고 자신의 성을 고씨로 정했다. 이때가 기원전 37년으로 주몽의 나이가 12살이었다.( 삼국사기에는 22살) '고려 본기'와 내용이 조금 다른 당나라 때 도세가 펴낸 '주림 전'의 고구려 건국신화를 소개한다. 해부로 왕의 몸종에게 태기가 있어 점을 치니 사내아이를 출산하면 분명 왕이 된다는 말을 들은 왕은 내 자식이 아니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며 아이를 해치려 하자 몸종은 이 아이는 하늘로부터 기운을 받아 밴 것이니 살려 줄 것을 애원했다. 마침내 몸종이 아들을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돼지우리에 던져 버리니 돼지가 입김으로 체온을 유지시켜 다시 마구간에 버리니 말이 젖을 먹여 키워 부여왕이 되었다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