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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일 Apr 08. 2021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요

현실적인 문제들



 2015년 여름 방학,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이 학원은 애니메이션학과 입시를 매년 준비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학생은 또 처음이었을 것이다.


 당장은 내가 들어가 있을 반이 마땅치 않아서 나는 고1 친구들이 여름 특강을 하는 반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겨울에 있을 편입 시험을 목표로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고 1반 담당쌤들이 나와 같은 학교의 편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나에게는 합격 가능성이 없는 편입이었다.     


 예상대로 그해 겨울, 편입 시험에서 떨어졌다. 나도 부모님도 이번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결정은 좀 더 쉬웠다. 다니던 학교에 1년 휴학을 내고 본격적인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거로. 그제야 겨울 방학에 고3이 된 친구들과 재수생 친구들이 있는 반에 합류할 수 있었다.     


 미술 입시를 하면서 자주 한 생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잘 그리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두 번째는 그런 실력을 갖추고도 괴로워하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세 번째는 이게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얘기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보통의 공부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고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 안 되는 부분들을 익혀 나가면 되는데, 이건 아예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중3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어야 했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인체나 옷 주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전에 배워야 할 걸 못 배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압도적인 시간의 벽이 나를 짓눌렀다. 이론적인 수업을 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나중에 모의 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는 정말이지 텅 빈 도화지가 숨 막혔다. 모의 시험은 실제 시험처럼 주제를 가지고 4시간 동안 시험을 본다. 그 후에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다같이 서로의 그림을 앞에 걸어 놓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남들보다 구도(構圖)를 못 보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4시간 혹은 8시간(방학 특강 때는 모의 시험이 하루에 두 번이다.) 동안 내내 끝까지 서서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뭐가 가장  문제인지 모르니까 수업 시간 이외에 내가 어떤   보충해야 하는지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선생님께 묻고, 인터넷 서치도  많이 해서 집에서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거기서 배우는  소화하는 것만으로 벅찼다. 오늘 배우면 내일 바로 써먹어야 하니까. 체력 좋아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뻗기 일쑤였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현실적인 어려움’ 이었다. 천성이 계획적인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꿈을 선택했으니까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당연히 믿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대학을 10년 다닌 여자’ 이 매거진은 내 실패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성장도 하고 옳은 선택도 하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간에서 봤을 때는 아마 실패담에 더 가까울 것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많은 분께 위로와 공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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