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인 문제들
2015년 여름 방학, 미술 학원에 등록했다. 이 학원은 애니메이션학과 입시를 매년 준비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학생은 또 처음이었을 것이다.
당장은 내가 들어가 있을 반이 마땅치 않아서 나는 고1 친구들이 여름 특강을 하는 반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겨울에 있을 편입 시험을 목표로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고 1반 담당쌤들이 나와 같은 학교의 편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나에게는 합격 가능성이 없는 편입이었다.
예상대로 그해 겨울, 편입 시험에서 떨어졌다. 나도 부모님도 이번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결정은 좀 더 쉬웠다. 다니던 학교에 1년 휴학을 내고 본격적인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거로. 그제야 겨울 방학에 고3이 된 친구들과 재수생 친구들이 있는 반에 합류할 수 있었다.
미술 입시를 하면서 자주 한 생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잘 그리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두 번째는 그런 실력을 갖추고도 괴로워하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세 번째는 이게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는데, 뭘 물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거였다.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얘기들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보통의 공부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고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 안 되는 부분들을 익혀 나가면 되는데, 이건 아예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중3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어야 했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인체나 옷 주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전에 배워야 할 걸 못 배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압도적인 시간의 벽이 나를 짓눌렀다. 이론적인 수업을 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나중에 모의 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는 정말이지 텅 빈 도화지가 숨 막혔다. 모의 시험은 실제 시험처럼 주제를 가지고 4시간 동안 시험을 본다. 그 후에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다같이 서로의 그림을 앞에 걸어 놓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남들보다 구도(構圖)를 못 보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4시간 혹은 8시간(방학 특강 때는 모의 시험이 하루에 두 번이다.) 동안 내내 끝까지 서서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뭐가 가장 큰 문제인지 모르니까 수업 시간 이외에 내가 어떤 걸 더 보충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선생님께 묻고, 인터넷 서치도 더 많이 해서 집에서도 많은 그림을 그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거기서 배우는 걸 소화하는 것만으로 벅찼다. 오늘 배우면 내일 바로 써먹어야 하니까. 체력도 안 좋아 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뻗기 일쑤였다.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현실적인 어려움’ 이었다. 천성이 계획적인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꿈을 선택했으니까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당연히 믿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대학을 10년 다닌 여자’ 이 매거진은 내 실패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성장도 하고 옳은 선택도 하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간에서 봤을 때는 아마 실패담에 더 가까울 것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많은 분께 위로와 공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