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었다.
다만 그 병이 언제부터, 누구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1. 그는 남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작은 지역사회에서 거들먹거리며 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고상한 취미,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무언가를 그는 늘 고민했다. 그는 이상한 돌들을 쌓아두고 버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조약돌 정도의 크기이던 것들이 나중에는 사람 몸집만 해져서 집 여기저기에 쌓여갔다. 먼지도 없고 온기도 없는 집에 차갑고 윤기 나는 돌들만이 가득했다. 그는 매일 그것들을 닦고 또 닦았다. 말랑하고 따뜻하던 이들이 점점 윤기를 잃어가며 바스러지는 것도 모른 채, 각자의 마음속에 점점 크고 딱딱한 돌들이 생기는 것도 모른 채, 그는 매일 돌들을 닦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그가 죽으면 자신이 버리지 못한 돌 개수만큼이나 많은 원망과 미움 속에 묻히게 될 거라고, 하얀 꽃과 그의 생을 아까워하는 마음이 아닌, 엉망으로 깨부수어져 날카롭게 제멋대로 날이 선 마음의 조각들에 무참히 깔리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가 돌만큼이나 쉼 없이 모으던 것은 난이었다. 쉬는 날이면 산에 가기를 좋아했던 그는 산에서 야생난을 캐어와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일 년에 한 번 난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그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모았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사람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빼곡하게 들어찬 난과 집안 가득한 돌들을 보며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그러면 그의 어깨와 입꼬리가 기분 나쁘게 들썩였다. 그는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면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사람이었다. 돌이 그랬고 난이 그랬다. 하지만 술과 담배, 폭력에도 그랬다. 사실 그가 집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이미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너무나도 멀쩡한 사람이니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웃들 입장에서는 그의 실체가 어떻든 간에, 결국은 엮여서 좋을 일이 없는 남의 집 문제였으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다른 층 애엄마들이 가끔 연민의 눈초리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말을 걸어주거나 하는 것이 그때의 우리가 받은 도움이라면 도움의 전부였다.
2. 그녀는 달콤하고 화려했던 젊은 시절에 사모은 오래된 살림살이들을 버리지 못했다. 겉보기엔 똑 부러지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자주, 또 많이 흘러내렸다. 소란한 밤이 지나고 모두가 지쳐 잠든 어스름한 새벽이 오면 그녀는 물에 갠 지점토처럼 질척해져서 그대로 굳어버리거나 물과 함께 녹아서 없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그녀가 먼저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감히 상상조차 하기가 어려웠지만, 내가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런 나의 불안을 잘 알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아득한 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에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내 머리카락을 바짝 당겨 묶어주었다. 그렇게 힘이 들어간 손길을 느끼면 나는 또 금세 안심했다. '아 우리 엄마는 아직 괜찮구나, 역시 괜찮구나. 학교에 갔다 와도 엄마가 그대로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우리가 학교에 간 사이 지난밤 어지러워진 집안을 말끔히 치워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히려 무슨 좋은 일이 생겨 축하라도 하듯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두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예쁘고 빛이 나던 살림살이들이 그 빛을 잃어갈 때 즈음엔 그녀의 눈동자에도 희뿌연 초록의 이끼가 내려앉았다. 그녀가 녹내장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었을 때, 나는 어쩌면 그 병이 그녀가 그동안 흘린 수많은 눈물의 물때가 그녀의 눈동자에 끼어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엄마는 큰 대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공터같이 너른 공간을 앞에 두고 작은 독채들이 줄줄이 있던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엔 화장실 문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다락이 있었다. 다락에는 모두 빛이 바래고 제 기능을 하긴 하는지 의심스러운 오래된 살림들로 가득했는데, 다락이 내려앉을까 봐 걱정이 되면서도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잠자코 두었었다. 짝을 잃거나 찐득한 묵은 때가 눌어붙은 세간살이들도 그녀에게는 모두 너무나 소중해서 하나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잔뜩 쌓아두고 살면서도 그녀는 20년 전 혼수로 해갔다는 파도 색의 알갱이가 아름답던 고블렛 잔이나, 분홍색 꽃이 잔잔하게 그려진 하얀 도자기 그릇 같은 것 챙겨 오지 못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아쉬워했다.
나는 지금 '늙은이의 방'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늙지도 젊지도 않던 그녀가 갑자기 부서져버린 그 날 그녀는 자신의 짐들이 한가득 들어찬 작고 늙은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그녀는 그 방 안에서 자신의 소중한 많은 것들을 그대로 둔 채, 파도 거품처럼 흩어졌다. 눈 깜짝하는 사이 들이쳐 삽시간에 모래 위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고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렇게 갑자기.
우리는 더 천천히 그녀를 곱씹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그녀의 짧지 않은 인생과 그녀의 소유물들을 빠르게 정리했고, 그것은 우리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를 덮친 커다란 해일 같은 상황에 휩쓸려 정신없이 고꾸라졌고, 눈과 코로 들이치는 짠 바닷물 같은 버거운 현실이 너무 매워서 제대로 서있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것을 버려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의 55년을 정리하는데 5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3. 나는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린 그와 그녀의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다. 나는 시들은 꽃이나 화분들을 잘 버리지 못해 집안 곳곳에 쌓아두었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잼을 아무렇지도 않게 냉장고 깊숙이 밀어 넣어 두기도 했었다. 강아지가 물어뜯어 솜이 다 빠져버린 라벤다색 이불은 단번에 버리지 못해 며칠을 더 덮고 울다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버렸다. 라벤다색 이불은 내가 상도동의 반지하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그리고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보러 서울에 오던 날 그녀와 함께 네 시간 반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온 것이었는데 이불의 숨이 다 죽어서 겉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나는 그걸 버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내가 반지하에 사는 동안 나와 내 개, 그리고 그녀는 자주 아팠고, 우리들 중 그녀가 제일 먼저 떠났다. 반지하로 이사하던 날 그녀는 해가 하나도 들지 않는 집을 보고 울고, 천진하게 꼬리를 흔들며 폴짝이는 내 개를 보고 울고, 한여름인데도 껍데기가 다 벗겨져 부르튼 내 손을 보고 울었다. 그래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 상가에 가서 천을 떼와 해는 들지 않는데 쓸데없이 크기만 한 창문을 가리고, 몇 없는 옷가지를 걸어둔 헹거를 덮으며 웃었다.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는 그 집을 떠나 작은 베란다가 딸린 빌라의 2층으로 이사온지는 어느덧 4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쌓인 여러 짐들이 뒤엉켜 이제는 베란다가 가득 찼다.
4. 엄마와 함께 반지하에서 라벤다색 이불을 펼치던 그 해 여름의 냄새는 아직 내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 당장 지난밤에 느낀 작은 우울도, 한때 영원을 약속할 듯 나를 바라보던 떠나간 사람의 눈빛 같은 것도 쉽게 버리기가 힘들어 모두 껴안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가진 것이 참 없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사실은 버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것을 들일 공간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알아채는 중이라는 것이다. 지나간 일들에 붙잡힌 채 스스로를 괴롭히는 못난 마음이나, 줄 곳이 사라져 쓸모가 없어졌다 여기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던 내 진심도, 버릴지 말지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들인 것이다. 단번에 다 버려버리는 것은 어렵겠지만 조금씩 비워내다 보면 새로운 좋은 것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울 것이다. 새로운 좋은 마음이라던가, 좋은 기억이라던가 하는 허황되지만 왠지 조금은 희망적인 것들이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가장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언젠가 모든 것이 조금 더 좋아질 것이라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인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