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길었던 그해의 명절 연휴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어쩐 일로 조용하게 넘어가나 싶었지만 나의 섣부른 안심이 독이 되기라도 한 듯 밤이 늦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고, 우리는 익숙하면서도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을 이어갔다.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더 불안한 마음이 컸었다. 한데 그날, 그런 기분을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정적을 깨는 전화벨이 울렸고, 엄마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갈 채비를 하라고 했다. 그가 오고 있고, 우리는 도망쳐야 했다.
나는 온몸을 휘감는 공포에 손을 떨며 겨우겨우 옷을 챙겨 입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눈빛은 매우 흔들리고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우리들만이 알 수 있는 특유의 차 소리가 아파트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고, 우리는 서둘러 신발을 신고 불 꺼진 비상계단에서 숨을 죽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간 자칫 그와 맞닥드릴 수 있으니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이 우리는 한달음에 7층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우리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무언가 깨부수어지는 둔탁한 소리들이 아파트 단지에 크게 울려 퍼졌다. 놀이터 아래의 주차장으로 뛰어가니 9층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의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탈출극이었다. 택시가 톨게이트를 통과해 고속도로에 오를 때 까지도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요동치던 심장이 차분해지고 거칠었던 호흡이 조금 잠잠해질 때 즈음 엄마가 입을 뗐다.
"오늘은 도저히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택시 안은 다시 침묵뿐이었다. 늦은 밤 빈 고속도로를 가르는 차체의 황폐한 소리만이 휑휑하게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귀를 막은 채 무릎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 날밤 나는 전에 없던 커다란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죽음이라는 무지막지한 괴수가 코 앞까지 와서 커다란 입을 벌리는 듯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고, 살려면 오직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두 발을 움직이게 했다. 저항할 수 없는 어떤 강한 힘이 우리를 자꾸만 낭떠러지로 밀어내는데, 버티기 어려운 거센 바람이 우리를 휩쓸어 가는데, 우리는 그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쪽으로 발을 떼며 걸어 나가야 했다. 두려웠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우리를 찾아내 술만 취하며 입버릇처럼 말하던 '다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하는 상황이 실제로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대로 다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기대가 생겨나기도 했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1시간가량을 달려 대구의 외삼촌 네로 갔다. 우리 3남매는 작은방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들었고, 엄마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언니는 먼저 기숙학교로 돌아갔다. 나와 남동생, 엄마는 아직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며칠을 더 외삼촌 집에서 묵었다. 그러는 동안 연휴가 끝이 났지만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에 돌아가면 둘러댈 적당한 말을 미리 준비해둬야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내가 겪는 상황들이 다 너무 가짜 같아서 때로는 나도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기도 했다. 다 꿈이면 좋겠다고, 아주 깊고 오랜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했었다. 일전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털어놓았던 우리 집 이야기는 철없는 몇몇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미 빠르게 퍼져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살이 붙으며 저 멀리까지 뛰어가버리는 소문의 발을 붙잡고 싶은 마음도, 내게 등을 돌린 애들에게 애써 이해를 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시기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속에서 썩어가던 말들의 대부분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쉽게 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점점 입을 닫아갈 뿐이었다.
그가 조금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걱정과 안도를 안고 돌아간 집은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바닥에 퍼진 유리파편들 때문에 신발을 신은채 거실로 들어가야 했다. 현관 왼쪽으로 바로 보이던 내방의 나무문에는 서슬 퍼런 식칼이 꽂혀 있었다. 꽂힌 칼 주변으로는 여러 번 칼을 내리꽂았던 흔적이 남아있었고, 문 아래쪽엔 무자비한 발길질로 생겨난 구멍이 나를 기분 나쁘게 노려보고 있었다. 경첩은 너덜거렸다. 만신창이가 된 방문을 보고 있자니 이미 큰 구멍이 여러 개 나있던 내 마음에 또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울음을 애써 참으며 방문을 조심히 열었다. 다림질을 해서 걸어두었던 교복이 예리한 무언가에 의해 매섭게 잘려있었다. 찢어진 교과서들은 바닥에 패대기 쳐져 있었다. 나는 불규칙적으로 난도질된 교복 치마를 붙잡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할까,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끝이 있기는 할까. 정말 우리가 다 죽어야만 이 고통이 끝이 날까.'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켜 발이 닿지 않을 듯 깊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괴물로 변한 자신이 무서워 도망을 간 딸아이의 교복 치마를 가위로 자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마음 따위는 알고 싶지가 않았다. 만약 그날 밤 우리가 도망치지 않고 그를 맞았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지독한 밤을 견뎌야 했을까. 어쩌면 내 교복 치마는 무사했을까. 그가 무자비하게 휘두른 칼날에 교복 치마 대신에 엄마가, 어쩌면 내가 찔리고 베이진 않았을까. 무서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났지만 우리는 또 익숙하게 집안을 정리해나갈 뿐이었다. 당시의 우리는 이미 너무 길들여져서, 너무 오랫동안 그래 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으니 이제 한동안은 또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밖에 하지 못했었다.
내게는 어릴 적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가 행패를 부리느라 사진을 모아둔 앨범을 모두 불에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그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지냈었다. 그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나는 영원히 끊어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있었고 그것이 나를 목 조르고, 깊은 밤 작은 기척에도 놀라 잠에서 깨어나 이유 없이 울게 만들었다. 그런 밤에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다 덮어버린 것처럼 서늘하고 무서웠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그의 방식대로 길들여지고, 그 안에 갇혀버렸다. 나는 겉이 멀쩡하지만 속은 엉망진창으로 짓이겨진 아주 자존감이 낮은 어른으로 자랐고, 좋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쉽지 않은 여자가 되어가는 슬픈 기분을 자주 느껴야 했다. 소리 내어 울기가 어려워 끅끅거리며 가슴 언저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죽은 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큰소리를 내었다. 그는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도 차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의 앞에선 늘 기가 죽어있었던 나는 더 이상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가라고, 우리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괘씸한 년이라며 욕지거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더 이상 경멸스러운 그 눈을 피하지도, 술에 취한 그가 두렵지도 않았다. 비틀거리며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나 혼자서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영원히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나는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어 울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멈추지 않는 눈물만을 하염없이 흘렸다. 눈물을 흘리다 조금 잦아들면 어색하게 확대된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러다 또 눈물이 나면 그저 조용히 우는 것이 그날 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나는 한동안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미운 마음의 폐곡선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남들에겐 없는 무조건적인 원망과 미움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 때로 위로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사막 같은 마음에는 매캐한 흙먼지만 불었다. 내 사막에는 영원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아득한 기분에 빠져들어 외로움은 어쩌면 당연하게 내 옆을 지키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힘들었던 10월이 지나고 나니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마음들로 조금씩 활력을 더해가는 시간들이 다시 쌓이고 있다. 황량하고 건조해진 마음밭을 다시 적시는 것은 허황된 기대감이 만들어낸 신기루가 아니라 진심이 만들어내는 작은 마음 방울들이 모아진 소중한 시간들일 것이다. 요즘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몇몇의 진한 마음들이 모아져 내가 또 이렇게 하루를 버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으로 매일을 지내다 보면, 나의 최선과 주변의 진심 방울들이 모아져 심어진 것이 별로 많지 않은 내 마음밭에서도 언젠가 싹이 돋아나고, 나무가 되고, 어쩌면 누군가 쉬어갈 그늘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울창한 숲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는 마음과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
내 주변의 진심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나는 지금 숲을 만들어가기 위한 첫 삽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