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

시간과 죽음

by 주연

"얼굴에 복이 참~ 많으시네요!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희한하게도 나는 어딜 가든 이렇게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늘 타깃이 되는 사람이었다. 죽상을 하고 다녀도, 웃고 다녀도 어쩐 일인지 내 얼굴에는 복이 많다며 둘씩 짝을 지은, 특유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따라붙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살이 많았던 건데, 기름진 걸 많이 먹어 얼굴이 반질했던 건데. 거기에 하나 더, 모르는 동네에 가거나 심지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서도 사람들은 내게 길을 물어왔다. 과연 내 얼굴엔 정말 복이 많은 걸까? 혹시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챌 수 있는 뭔가가 내 얼굴에 있는 걸까?


차가운 회색 도시 서울에 산지 10년 차 정도가 되면 이런 사람들을 못 본 체 그냥 지나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처음엔 멋모르고 붙잡히기를 여러 번. 물론 나는 한때 '그것이 알고 싶다'라던가 '추적 60분'같은 프로를 열심히 챙겨보던 애청자 였으므로 절대로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 정성을 들인다거나, 따라간다던가 하는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데 딱 한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었다.


그해, 나는 웹툰 '죽음에 관하여'를 매주 열심히 챙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에 엄마가 돌아가셨고, 나는 아주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야 했다. 엄마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지독했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겪는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유일한 배경, 나의 가장 크고 넓은 울타리였던 엄마가 되니 나는 몹시도 흔들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울고,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가도 울고, 자려고 누워서도 멈추지 않는 짠 눈물을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어디서 그렇게 자꾸만 만들어지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범벅인 얼굴로 매일을 보냈다. 처음에는 실감조차 나지 않던 엄마의 죽음은 날이 갈수록, 기온이 내려갈수록 점점 더 피부로 와 닿았고 결국 12월을 끝으로 다니던 레스토랑에서도 퇴사를 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생애 가장 춥고 외로운 겨울을 견뎌야 했다. 얼른 겨울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해를 좀 쬐어야 할 것 같아 며칠 만에 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시장 근처에 살던 때라 삼거리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활력 넘치는 사람들 사이 나는 부은 얼굴을 모자로 가리고 공원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뭐 바쁜 일은 없는데요"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겪었던 소위 도를 공부한다는 사람들과는 달리 너무도 단정하고 멀쩡했다. 그들이 타깃으로 삼아 붙잡아 세우는 나름의 기준이 있듯이, 타깃이 많이 되어봤던 나에게도 그들을 잘 알아보는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느낌이 딱 오는 그런 것. 그들에겐 그런 게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달랐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지만 나는 길을 건너지 않았다. 그가 건넨 단 한마디의 질문 때문이었다.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마치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해주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곧바로 대답을 쏟아냈다.


"네 저는 요즘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었거든요. 그 전엔 죽음이 저랑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 옆에 늘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뭐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요즘 제가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도 열심히 보고 있고요.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시구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늘 생각하는 분들은 드문데 오늘 저희가 꼭 만나야만 했었나 봐요!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이 화면을 좀 봐주시겠어요?"


그가 내민 태블릿 PC 화면에는 죽음에 관한 여러 명언이 영상과 함께 편집되어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현생에서의 죽음은 구원을 받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그가 믿는 어떤 신을 내가 따르게 된다면 죽어서도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나는 아마도 영원히 믿지 않을 종교적인 내용이 영상의 결론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날은 길에 선 채로 끝까지 그 영상을 관람했다.


"영상을 끝까지 다 봐주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신데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은 저도 정말 보람이 있네요"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런데 저는 영생을 얻고 싶지 않아서요. 죽음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저는 이번 한 번만 살아도 충분할 것 같아요 하하"


그런 내 태도가 지나치게 진지했는지 오히려 그가 한발 물러섰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운 결말이지만, 나는 정말 그랬다.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도, 어쩌면 하루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그때의 내 심경이었다.


무조건적인 내 편이 사라진 것, 기대거나 되돌아 갈 곳이 없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엄마의 죽음이었다.

언제나 늘 거기에 있는 사람. 내가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비빌 언덕 같은 존재가 엄마였다.

엄마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옅은 숨에서 오는 안심 같은 것은 이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기분이 될 것만 같았다. 뒤가 사라진 낭떠러지에서 홀로 찬바람을 맞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괴로움에 빠져야 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엄마의 흔적을 뒤적이며 여러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덧 일곱 번이나 해가 바뀌었고, 이 정도로 담담히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 만큼이나 엄마의 죽음에 대해 꽤 많이 홀가분해졌다.


1350.jpg 영화 라우더 댄 밤즈


엄마와 내가 겪었던 과거의 일들을 지난 몇 달간 글로 쓰고 보니 우리가 참으로 고단하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밤들도 결국은 끝이 났고, 절대로 작아질 것 같지 않던 그때의 두려움이나 미움도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결국에는 흐르고 옅어져서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들이나 흘러가는 마음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지만, 결국에는 이 시간도 흐르고 옅어져 끝이 날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만 찬란한 한 순간의 별빛이지* 하는 김창완 밴드의 노래 가사를 가만히 곱씹어 본다. 어떤 순간이 지나간 것, 바람이 이 나무를 지나 저 언덕을 넘어간 것처럼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라는 큰 벽이 우리를 가로막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엄마는 먼저 가버렸다.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지내며 나의 생활과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내편,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언덕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시간과 죽음 앞에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일 테니까.



*시간-김창완 밴드

https://youtu.be/oZbjZPeeQ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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