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가운데, 그중에서도 회사와 학원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나는 매일 샌드위치를 만들러 간다. 반복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계산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화가 났다가 즐거웠다가 지겨웠다가, 아 오늘도 정말 고생했다! 하며 퇴근을 하는 것이 요즘 나의 생활이다.
지금의 직장에 다니기 전 나의 마지막 직장은 서초동이었다.
당시 살던 상도동에서 직장이 있는 서초동까지 가는 461번 버스를 타고 엄마와 하루에 두 번 통화를 하던 것이 그 시절 나의 출퇴근 루틴이었다.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후로 깨달은 '우리의 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수다스럽게 만들었다.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들면 며칠씩 통화를 거르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것이 우리 둘의 대화였다. 밥은 먹었냐, 남자 친구는 생겼냐, 살은 언제 뺄 거냐, 집에는 언제 한번 내려올 거냐 하는 매일매일 똑같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래도 매일 같은 그 대화들이 나는 결코 지겹지가 않았다.
그해 가을,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이후에도 나는 하루에 11시간씩 아무렇지 않게 일을 했다. 달라진 점은 엄마와의 전화통화 대신 후드를 뒤집어쓴 채 코를 훌쩍이며 출퇴근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달 여를 그렇게 지내다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후로는 461번 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엄마를 만나러 추모원에 다니러 가는 날, 터미널로 가기 위해서 타야 하는 버스는 여전히 461번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와서 10여 년간 온갖 번호의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내게 461번 버스는 유독 기억에 남고 아린 숫자가 되었다. 라벤다색 이불을 사들고 서울 딸네 집에 처음 와보던 날 엄마가 탔던 버스도, 엄마가 죽은 후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내가 타야했던 버스도 모두 461번이었다. 그러니 잊힐래야 잊힐 수가.
그 후 6년만에 나는 다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출퇴근 시간이 조금 달라서 혼잡한 지옥철이나 트래픽을 겪어야 하진 않지만 대신에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스케줄 근무를 하고, 직장인들이 출근하지 않는 공휴일에는 더 바쁘게 일해야 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최근에 연장 개통한 9호선 덕분에 12월부터는 출근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출근은 시간을 딱 맞출 수 있는 지하철로, 퇴근은 집 앞 큰길까지 한 번에 오는 340번 버스로 하고 있다. 한 가지에 진득하지 못한 내게 매일 같은 방식으로, 같은 곳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것이 어느 날은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공드리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홀린 듯 반대편 플랫폼으로 뛰어가 직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버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가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탁 트인 바다도, 옛 애인과의 추억이 있는 아련한 동네도 아니다. 가방 속엔 시집 한 권, 그리고 지나치게 생동감이 넘쳐 메뚜기가 될 것만 같은 초록색의 유니폼이 곱게 개어져 들어있다. 이 기분을 억누르고 출근을 하면 금세 한 달이 흐르고 그렇게 버텨낸 한 달치의 월급이 약속된 날짜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강아지에게 먹일 고급사료도 사고, 작은 내방 월세도 내고, 맛있는 커피도 사 마실 수 있다.
서른셋이 되고 보니 나는 자주 불안하다. 친구들은 승진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사업이 번창하며 각자의 성과를 낸다. 사장에서 다시 직원이 된 나는 캡틴이라는 직책을 달고 입사를 했지만 종일 샌드위치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내가 샌드위치가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빠질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샤워를 해도 몸에는 특유의 샌드위치 냄새가 배어있다. 귀가 먹먹하고 목이 따갑다. 그래도 나는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 하니까 오늘의 고단함이나 속상함은 오늘로 남겨두어야 한다. 일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낼 순 없으니 짬짬이 시간을 내어 혹은, 밤을 새우며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쓰고,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는 강아지와 산책을 하며 나만의 속도와 온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밥벌이가 되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10여 년째 경험 중인 노동자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뻔하고도 납득이 되는 세상의 말들을 되뇌며,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가도 특별한 하루는 없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나는 오늘도 지하철에 오른다. 스마트폰으로 그 날의 기분에 어울릴 음악을 골라 재생하고, 시집을 펼친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을 이기는 나만의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