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가장자리를 둘러싼 억새풀들이 천천히 흔들린다. 내 키보다도 더 큰 억새풀들은 바람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몸을 맡긴 채 넘실거린다. 나는 저수지 반대편을 바라보며 목적 없이 걷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 따뜻한 바람의 기운만이 느껴진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플라타너스의 솜털들이 날리는 노오란 시간. 맞다. 이건 꿈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저수지.
우리 세 남매가 태어난 오래된 병원 건물에 반쯤 가려진 저수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아파트의 7층에서도 내려다 보였고, 혼자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저수지. 언젠가 엄마 손을 잡고 함께 죽으러 갔던 그 저수지다. 지금은 엄마가 잠든 추모원을 가려면 꼭 지나쳐야 하는 그 저수지를 꿈속에서 걷고 있는 것이다. 한쪽 귀퉁이에 서서 멍하니 보는 것이 전부였던 그 저수지를, 꿈속에서는 자박자박 걷고 있다.
2012년 가을, 엄마는 급성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죽은 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 꿈을 꾸지 않았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도 엄마가 꿈에 나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는 꿈에서 엄마를 보았다고 했다. 꿈속의 엄마는 서럽게 울고 있었고, 등이 흉측했다고. 우리는 참 덤덤하게도 그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의 등이 왜 흉측했을까를 생각하다 나는 그해 10월의 가을밤을 떠올렸다.
그날 밤도 엄마는 혼자 잠이 들었다. 늘 그랬듯 아마도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 자다 깨다 티브이를 보며 천천히 잠이 들었을 것이다. 곤히 잠든 엄마의 심장에 갑자기 어떤 단어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커다란 어떤 것이 순식간에 내리 꽂혔을 테고, 엄마는 고통에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을 것이다. 두 번째 쇼크 후 엄마는 완전히 숨이 멈추었고 작은 몸에서는 분비물들이 흘렀다. 맺힌 눈물이 깊게 주름 패인 눈가를 적시고, 얼굴을 타고 흐른 눈물은 엄마의 작은 몸속에 남아있던 원망과 후회와 기대와 그리움이 뒤엉킨 온갖 것들과 함께 천천히 흘러 들꽃 무늬가 잔잔했던 이불을 적시고, 28만 원짜리 침대를 물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엄마는 혼자의 방에서 나와 공공의 차가운 스테인리스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영원히 우리를 떠났다.
언니가 꿈에서 엄마를 본 것은 우리가 천도재를 지내기 전이니 엄마가 돌아가신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 이후 나는 엄마에게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 꿈에는 나왔으면서 왜 내 꿈에는 나오지 않을까? 엄마는 죽어서도 내가 두 번째일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대체 내 꿈에는 언제쯤 나올까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작년 9월, 대전의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뉴스속보가 나왔다.
퓨마의 이름은 호롱이. 호롱이는 8년째 동물원에 살고 있었고, 늦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제대로 잠기지 않은 문을 통해 탈출인지, 외출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길을 나섰다. 호롱이는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살되었다. 나는 호롱이의 탈출부터 사살까지의 과정을 일과 중 틈이 날 때마다 찾아보았다. 인간의 이기심이 또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 분하고 속상했다. 그리고 며칠 후 꿈을 꾸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황금빛의 그 저수지를 내가 걷고 있었다. 바라보기만 할 뿐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그 저수지를, 억새풀들이 넘실거리는 그 저수지를 걸었다. 그때 수풀 사이 천천히 움직이는 어떤 형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온통 노을로 물든 그곳에서 노을보다 더 진한 노란 얼굴의 호롱이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천천히 걸어오는 호롱이를 보고 나는 발이 얼어붙었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촉감만으로도 알 수 있는 그 손. 도톰하고 따뜻한 엄마의 손이다. 고개를 돌리자 노을빛에 물이 든 엄마가 노랗게 웃는다.
"호롱이야."
"응. 엄마 호롱이야. 엄마 근데 호롱이는 호롱이 엄마랑 만났나?"
"응. 작은 딸, 만나서 다들 잘 지내고 있지."
"다행이다. 엄마는 어떻노?"
"엄마도 잘 지내지. 딸, 엄마 걱정 하나도 하지마래이. 엄마 진짜 잘 지낸다."
"아. 그것도 진짜 다행이다.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궁금했는데 언니 꿈에만 나오고 내 꿈에는 안 나와서 쫌 서운했데이.. 근데 엄마가 언니 꿈에서 울었다고 해서 엄마가 거기서도 맨날 슬프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근데 잘 지낸다니까 진짜 다행이다. 이제 내만 잘 지내면 되겠네. 맞제?"
이게 전부다.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꿈에 나온 이야기의 전부.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엄마는 다시 내 꿈에, 어느 누구의 꿈에도 나오지 않았다.
호롱이가 죽은 그날 밤 나는 엄마가 떠올랐다.
생전엔 한 번도 마음껏 달리지 못했겠지만 퓨마는 달리기가 빠른 동물이니 아마도 꽤 빠르게 무지개다리를 건너 엄마를 만나러 가지 않았을까, 호롱이가 엄마와 함께 어느 누구도 가둬지지 않는 너른 들판을 신나게 달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그날 호롱이가 길을 나섰던 것은 이제는 얼굴을 쉬이 떠올리기도 어려워진 어린 시절 헤어진 엄마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 전에는 엄마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엄마는 당연히 우리 곁에 있는 사람, 그렇게 쉽게 우리를 떠나지는 않을 사람이라 여겼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마음에는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상실은 지독했지만 현실은 그럼에도 꾸준히, 멈추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 주었다.
어느새 엄마가 죽은 지는 7년이나 되었다. 엄마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가도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다가도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바닥 끝까지 기분이 내동댕이 처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차저차 엄마 없이 또 한 해를 살아낸 것이다.
언젠가 내 생이 끝나는 날에는 나도 열심히 달려 무지개다리를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호롱이와 엄마가 있는 그곳에서 우리가 모두 만나 노랗게 웃는 얼굴들을 마주 할 날을 상상해본다. 아직은 자주 괴롭고 힘이 들지만 그날 밤의 꿈에서 엄마와 내가 나눈 대화처럼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는 모두 함께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다 그럭저럭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드는 것, 언젠가 죽음의 순간과 마주 서는 것이 그리 슬픈 일만을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