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에게 어느 계절로 기억되는 사람일까?
누군가에게는 봄 같고 누군가에게는 여름 같은 존재일까? 어쩌면 한겨울처럼 매섭고 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고 나는 모든 계절을 사랑하지만, 봄의 생동감이나 겨울의 차분함, 여름의 싱그러움이나 가을의 풍성함 같은 것을 떠올리다 보면 이제는 어느 한 계절로 좋아하는 계절을 딱 집어내기가 어려워진다.
시집이나 노랫말들에서도 절절히 사랑하는 대상에게 특정 계절을 대입하는 구절들을 제법 자주 보게 된다. 모든 계절을 쉽지 않게 지나가는 내가 누군가에게 어느 계절이 되는 것,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건 꽤나 낭만적일 거라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 계절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다만 어떤 시기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라는 건 꽤 멋진 일임이 분명하니까.
엄마는 봄에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늘 봄의 한가운데에서 엄마의 생일을 축하했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딱 엄마의 계절 같았다. 엄마를 떠올리면 봄처럼 따뜻했고, 넓었고,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듯한 느낌이 함께 따라왔다.
언젠가 엄마에게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가을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라고 되물으니 '네가 가을에 태어나서'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쓸어주었었다. 나는 그 대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되묻고 또 되묻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가을이 제일 좋아. 우리 딸이 엄마에게 와줬잖아' 하고 똑같이 대답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망설임 없이 봄이라고 대답했었다. 엄마가 내게 와준 계절이니까. 엄마가 우리 엄마가 되어준 계절이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엄마가 정말로 가을을 너무 좋아해서 그해 가을에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먼저 가버린 걸 수도 있다는 엉뚱한 결론이 도출되기도 했다. 때때로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엄마에 대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며칠 전 그와 퇴근길을 함께 하다가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봄'이라고 대답했다. 이유를 물으니 봄에는 다른 계절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름이나 겨울엔 얼른 그 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이 오길 기다리지만 봄엔 그렇지 않잖아, 가을은 왠지 좀 쓸쓸하고. 그리고 이번 봄은 너랑 함께 하게 될 테니까 더 기다려지고 기대돼."
나는 그의 대답을 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다음 계절이 생각나지 않는 유일한 계절이라니. 묘하게 납득이 가는 대답이었다. 그와 나, 우리 사이를 계절로 정의한다면 나는 어느 계절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매캐한 먼지바람에 온통 뿌옇게 흐려진 세상에서 나에겐 늘 봄처럼 맑고 따뜻하게 웃어주는 사람이 곁에 온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만 지나면 지난했던 겨울의 기운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새로운 것들이 활짝 피어나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함께 서 있을 것이다.
4월이 되면 일 년에 두 번 내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 중 첫 번째 날인 엄마의 생일이 돌아온다. 매번 혼자 가던 그 길을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되었다. 온갖 복잡한 것들로 매 계절 흐릿하고 흔들리던 나의 세계에 찾아온 명확한 사람, 모든 새로운 계절을 함께 하고 싶은 이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곳이 어디든, 어느 계절이건 같이 해보자고 말한다.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가장 먼저 새 계절이 찾아오는 그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