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

by 주연

나는 서른해를 넘게 사는 동안 많은 이들을 미워했다.


내가 처음으로 미워한 사람은 할머니였다. 나는 나와 너무 닮은, 내가 너무 닮은 그녀가 싫었다.

우리 가족을 늘 폭풍우 한가운데로 몰아넣는 사람, 용심 가득한 기름진 볼이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튀어나온 입술은 그녀를 생각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그녀의 상징이었다.

가끔 엄마와 언니는 그녀와 닮은 내 외모를 놀리곤 했는데, 특히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 마음이 꽁해 있을 때의 내 얼굴이 그녀의 얼굴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뾰로통한 얼굴이, 씨도둑질 못한다는 옛말에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나와 비슷한 눈매나 이상하리만치 똑 닮은 발가락의 모양 같은 것과 오버랩되면 나는 그녀가 더욱 미워졌다.


'왜 하필이면 할매를 닮아가꼬, 엄마처럼 쌍꺼풀도 있고 코도 컸으면 좋겠는데 아... 짜발나.'

외모에 급격히 관심을 갖게 된 남녀공학 시절, 밤마다 야자실에서 몰래 거울을 보며 하는 생각의 도착지는 늘 한결같았다. 무표정일 땐 어딘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그녀와 똑 닮은 거울 속 이목구비를 보고 있으면 짜증이 몰려왔다.


사실 나는 할머니를 미워하고도 좋아했다. 집안의 딸애들과는 다른 뭔가를 가진 사내들이 늘 우선인 그녀에게 딱 한 명의 예외가 바로 나였다. 까만 봉다리로 가득한 조그만 냉장고에서는 내가 가는 날에만 얼린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나왔다. 다른 애들은 손도 대지 않는, 매서운 눈으로 째려보는 커다란 멸치를 시래기나 말려둔 무청 따위와 함께 통째 지져낸 반찬을 나는 덥석덥석 잘도 집어먹었다. 할머니 스타일의 밥알을 넣어 끓인 팥죽도, 묵은내가 코를 찌르는 청국장도 푹푹 퍼먹었다. 꼬순내인지 고린내인지 분간이 어려운 할머니 집 특유의 냄새는 한동안 내겐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상징이기도 했다.


한 달간 기숙사에서 지내다 집에 가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그가 있는 송진의 임대아파트 대신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는 퇴촌의 시골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누룽지맛이나 계피맛이 나는 사탕따위를 까먹으며 두꺼운 겨울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드러누워 있다가 김이 폴폴 나는 할머니의 스뎅 밥상이 들어오면 정전기가 타닥이며 달라붙는 몸빼바지를 털며 개다리춤을 췄다. 그게 내 방식의 할머니에 대한 애정표현이었다. 그러곤 말없이 밥상을 당기고 앉아 반숙으로 알맞게 구워진 후라이를 한입에 털어먹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딱 한 마리뿐인 닭이 낳은 달걀을 구워낸 후라이를 단숨에 후루룹.


그녀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애정이 뒤섞인 감정을 늘 마음 한 켠에 품고 살았다. 나이가 든 그녀는 이제 점점 병들고 기력이 쇠해간다. 나는 스무 살 이후 단 한 번도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위태로운 인연의 끈들에 그저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다. 내 기억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윤이 나고 포동하게 살이 차올라 있다. 여전히 힘이 넘치고 손이 두툼하고, 무거운 밥상을 번쩍번쩍 잘도 든다. 밭에 쪼그려 앉아 고구마를 캐고 정구지를 뜯고 깨를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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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그녀는 그저 숨을 쉬고 있다. 하는 것이 거의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빠르게, 어쩌면 느리게 흐르는 그녀의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을까. 나는 아마 그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장례식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그녀를 만나러 갈 것이다. 내게 남아있는 그녀에 대한 온갖 감정을 갈무리해야만 그녀를 그만 미워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그리 쉽게 잊히지 않고, 그리 쉽게 없던 일이 되지 않으니까.




https://youtu.be/BcXF3PjntvA 브로콜리 너마저 - 할머니

*첨부된 사진은 이수현 감독 - 할머니의 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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