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어둡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사방에서 드잡이 하듯 휘몰아치는 바람에 우산이 자꾸만 우습게 뒤집어졌다. 빗방울이 산발적으로 흩어졌지만 나는 우산을 대강 정리해 가방에 구겨 넣고, 길 건너편의 카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달리다시피 들어온 카페 안,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동네의 카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간간히 들리는 커피 그라인더의 기계음이 더해져 귀가 힘들지 않을 정도의 백색소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나는 마실거리를 주문하고 빈자리를 찾아 눈을 돌리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날이 궂은날에 창가에 앉으면 바깥은 혼란인데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온전한 편안함을 누린다는 사실이 마음에 묘한 안정을 준다.
곧 진동벨이 울렸고, 주문한 녹차라테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출퇴근길에 읽는 중인 작은 소설집을 꺼내 올려두고서 아무 노래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꽃은 채 오늘은 무슨 노래를 들을까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비가 오는 날은 주로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연주곡을 들었다.
거센 바람에 우산이 우습게 뒤집어졌기 때문일까. 오늘은 어쩐지 조성모를 듣고 싶다.
주말 대청소를 끝내면 엄마는 크게 노래를 틀었다. 그가 나가고 우리만 남은 일요일에는 함께 대청소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스피커에서는 주로 조성모나 이문세, 노영심이 흘러나왔고, 가끔은 커다란 소니 오디오 아래를 가득 채운 클래식 전집을 들여다보다 신중히 하나를 골라 플레이어에 조심조심 씨디를 집어넣기도 했다.
엄마는 유독 조성모를 좋아했다. 출발드림팀에서 회색 추리닝바지를 입고 커다란 뜀틀을 번쩍번쩍 뛰어넘는 그가 브라운관에 반복해서 나오거나, 우리가 용돈을 모아 생일선물로 조성모 씨디를 사줬을 때 엄마는 아이처럼 웃었다. 덕분에 나도 자연스레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청소를 끝낸 오후에는 소파에 드러누워 영심이나 전국노래자랑을 보다가도 엄마가 노래를 고르면 나는 자연스레 티브이를 끄고 몸을 일으켜 소파에 엄마 자리를 마련했다. 엄마가 내 옆으로 와서 앉으면 나는 다시 엄마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무릎 아래로 자연스레 떨구어진 손으로는 엄마의 정강이나 종아리를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보드라운 살결을 느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그 촉감을.
그렇게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조성모의 노래를 들었다. 잃어버린 우산이나 비창, 진 같은 옛 노래들이 맑은 그의 음색을 통해 불리어졌고, 우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 폭풍 한가운데의 눈 같은 잠깐의 고요를 함께 보냈다.
엄마의 다리에는 상처가 아물며 생긴, 오돌토돌하고도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미끈거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느낌의 그 부위들이 서너 개쯤 있었다. 비단결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엄마의 살결에 생겨난 생채기들은 어린 나를 할퀴고 더 작아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쩐지 상처가 다 아문 뒤에 생겨난 그 부분들은 내게 묘한 안심을 주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물어진 상처들을 만지며 엄마는 아직 괜찮고, 엄마는 늘 다시 괜찮아지는 사람이라고 내 멋대로 단정 지어 버린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혀 괜찮지가 않았을 엄마의 진짜 마음을 외면하고, 엄마는 언제까지고 괜찮은 사람으로 내 곁에 남아있어 주기를 바랐으니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슬퍼지는 일들이 떠오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좋았던 날들이 조각조각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겉보기에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도 화목한 가족이었고, 때때로 지나간 괴로움이나 상실들을 망각할 만큼의 좋은 날들도 있었다. 다 함께 부곡으로 목욕을 하러 가던 날이나 옥천으로 보리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그가 몰던 하얀색 캐피탈의 낡은 오디오에서도 자주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이 흘러나왔다. 그는 잃어버린 우산이나 갈색추억을 자주 재생했는데 조수석에 앉은 엄마도, 뒷자리에 탄 우리 3남매도 모두 오디오에서 나오던 그 노래들을 따라 흥얼거렸다. 그 시절 유행하던 뽕짝이나 아빠의 청춘 같은 것은 우리 가족의 취향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딘가 쓸쓸하고 외로움이 묻어나는 노랫말들을 좋아했고, 가족이 다 함께 캐피탈을 타고 어딘가 가는 날에는 늘 그런 노래들이 앞뒤로 들어찬 카세트테이프들 중 하나를 골라 틀었다.
노래도 물건도 조금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내 취향은 아마도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만들어졌을 것이다.
덕분에 캐피탈에서 흘러나오던, 또래들은 부르지도 듣지도 않는 그 노래들이 나에게는 언제까지고 마음 한편에 남아있을 나만의 노래들이 되었다. 어디선가 '지금 듣고 있는 노래, 지금 읽고 있는 책,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을 나타낸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마음에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쳐 어지러울 때 이 문구를 떠올리며 지금 내가 듣고, 읽고, 함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 애써본다. 오늘 같은 날 너무나 자연스레 잃어버린 우산이 떠오르는 나의 취향은 아마도 짧고도 길었던 엄마와 나의 시간만큼 천천히 쌓여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