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연의 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31. 2018

병변 = 화병

"제 병변이 화병이라고요?!!"
"네 화병입니다. 아주 심해요"
젊은 한의사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대답했다.
 


 가게를 운영하던 시기에는 수시로 생겨나는 여러 문제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결정해야 했다. 객관적 판단이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그러면 탓을 돌릴 다른 상대가 없으니 잘못을 모두 내 탓으로 돌려버려야 했다. 내 잘못이 아닌 일들까지 내 탓으로 돌리는 내가 미웠다.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해 죽어라 죽어라 등을 떠미는 듯 벼랑으로 몰리는 날들의 연속에서 나 자신까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낮에는 좋은 사람 가면을 쓰고 실없이 웃었지만, 밤이 되면 스스로를 가혹하게 원망하고 미워했다. 이틀에 한 번은 끅끅대며 울다가 기운을 다 빼고 나서야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아침이면 몽둥이로 맞은 듯 온몸이 아팠다. 머리를 감으면 확연히 눈에 띄게 빠진 머리카락들이 손가락 사이에 뒤엉켜 있었다. TV를 틀거나 음악을 듣지 않으면 귓가에서는 기분 나쁜 단음이 계속되어 머리를 울렸다. 이런저런 여러 증상들이 나타났지만 가장 심한 것은 목과 어깨의 결림이었다. 낮동안 경직된 자세로 장시간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침대 구석에서 찌그러지듯 웅크린 채 잠드는 생활이 반복된 탓이었다.


 뻐근해지다 못해 굳어버린 목이 움직이지 않는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집 근처의 한의원을 찾았다. 침을 맞으면 며칠은 또 버티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병원이 주는 이질적 차분함에 기대 잠깐 단잠에 빠져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휴식이 될 터였다. 접수를 하니 치료에 앞서 진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진료기록이 없는 한의원에 처음 방문하면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니 잠깐 맥을 짚고, 아픈 곳을 말하면 되겠지 생각하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한의사가 앉아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아, 잘못 왔구나!' 하고 짧게 생각했다. 으레 그렇듯 나에게도 한의원은 연세 지긋한 선생님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뭉친 근육에 침을 놔주던 곳이었는데, 기껏해야 나보다 한 두 살이 많거나 어쩌면 나와 동갑일지도 모를 젊은 한의사라니... 그래도 뭐 이미 들어온걸 한의사가 젊다고 해서 진료를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상외로 그는 제법이나 진지했다. 진지하게 내 손목을 잡고 한참이나 맥을 짚었다. 진지하게 내게 이것저것 요즘 느끼는 증상들에 대해 질문했다. 그 눈빛이나 태도가 너무 진지해서 나도 같이 진지해질 정도였다.


"찬 물, 빵, 떡, 밀가루 안되고요. 약을 드릴 테니 아침저녁으로 꼭 챙겨 드세요. 아침엔 노란 봉투, 저녁엔 파란 봉투예요"
"네? 약이요? 저는 그냥 근육이 너무 뭉친 것 같아서 침 좀 맞고 가려고 온 건데요..."
"아 네네! 침 맞으셔야 죠. 근데 약도 드셔야 해요. 그나저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세요? 생각이 잠시도 쉬지를 않으시네요!"
"에? 저 뭐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불안이나 걱정이 엄청 많은데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없는, 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어요."


나는 내 속을 다 들켜버린 것 같아 멋쩍기도, 여기가 한의원인가 신경정신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해 갈 곳을 잃은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다 무심코 모니터로 눈길이 갔다. 인적사항과 증상 등이 적힌 차트가 띄워진 모니터 화면. 화면에 멈춘 내 시선에 들어온 단 하나의 단어는 '화병'이었다.
 
 일찍부터 주방일을 시작했으니 늘 뻐근하던 목이나 등 근육을 풀러 종종 한의원에 가면 뜸을 들이고 난 후 뜨거운 수건을 덮어 뭉친 데를 풀어주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동양의학에 대해 어떤 특별한 믿음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저 어릴 적 감기나 몸살이 들면 한의원에 자주 갔던 것이 그날 한의원을 찾은 영향이라면 영향이었다.  게다가 아픈걸 잘 참지 못하는 내게 통증 전문병원에서 놔주는 근육주사는 너무 아프고 비싸기까지 해서 선택한 차선책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그런데 화병이라니. 이 무슨 황당하고도 납득이 가는 소리란 말인가.

"저는 그냥 뒷목이랑 어깨가 뻐근하고 아파서... 아! 물론 제가 요즘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저도 잘 모르겠긴 합니다만... 화병이라니 뭔가 너무 무섭고도 단번에 와 닿네요. 아! 또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허허..."
"막연하게 들리시겠지만 동양의학에서 화병은 아주 심각한 질병으로 보고 있어요. 치료도 오래 걸리고, 병을 낫게 하려는 본인의 의지도 매우 중요하죠.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가야 해요. 꾸준히 병원에 오세요. 오늘은 침이랑 뜸 해드릴게요."



 사실 나는 작업실을 운영하던 중반까지도 버럭버럭 화를 잘 내었다. 화를 낸다기보다는 화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타인의 실수로 망가지거나 과한 원망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면 잔뜩 날이 서서 나의 모서리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거기에 어린 여자 혼자 작업실을 하니 만만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까지 작용해 조금만 일이 어그러져도 매섭게 질책하며 상대를 몰아세웠다. 지인들은 그러다 큰일 난다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냐며 조심을 당부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 할 정도로 화를 내던 때도 있었다. 상황이 진정되고 돌이켜보면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실제로는 화를 내어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를 참기 시작했고, 먼저 물러나기를 반복했더니 이제는 건강하게 제때에 풀지 못했던 그 화들이 쌓여 병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참는 만큼 상대가 나에게 내는 무지막지한 화를 감당하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어떤 감정적 충돌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 상황이 되면 늘 내가 먼저 뒤로 한발 물러섰다. 배려가 아회피에 가까웠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참음이 너무 과해졌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쌓인 감정들 덕분에 배가 불러 견딜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나를 뚫고 솟아오를 듯 부푼 무언가가 매일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머리와 발바닥에 여러 개의 침들이 꽂히고, 뜸을 들이고, 계산을 하고, 노랗고 파란 한약 봉투들을 받아 들고서 병원을 나섰다. 이 모든 걸 하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화병이라니... 내가 화병이라니...'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나는 화병이라는 그 무지막지한 단어에 꽂혀 또 정신을 못 차렸다.


 불안했던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상황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매일 큰 소리가 났고,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없었다. 나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만 닦아야 했다. 매일이 불안과 공포로 가득했고, 아주 천천히 나의 아주 깊은 내면부터 '너는 안돼, 너는 우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하는 애야'라는 말을 주입시키며 스스로를 억눌러 뭉개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는 '이 정도면 잘 자랐지, 그런 상황에서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지' 하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실은 아주 오랫동안 쌓인 여러 겹의 미세한 감정들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만 있었던 것이다. 서른이 넘고서야 나는 내가 조금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사춘기를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사춘기도 마음대로 겪을 수 없었던 때의 묵은 감정들이 이제야 나타나 나를 뒤흔들고, 날 좀 봐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깊은 울음을 한참이나 쏟아내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누르기만 해온 여러 감정들이 이제야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았다고 환호성이라도 치는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엉엉 울고 나니 딱딱하게 굳어있던 응어리들이 조금은 물렁해진 것도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울음을 그치고 샤워를 마치니 금세 커다란 졸음이 몰려왔다. 파란색 봉투에 담긴 한약을 데워 마시고 나니 당장에 이 잠에 빠져야만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나를 이불속으로 끌어당겼다. 마침 내일은 새벽 작업이 없는 날이고,  집에 와서 하려 했던 몇 가지 일들만 무시한다면 너무나도 달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몸을 뉘이자 긴장이 풀리고 금세 잠이 들었고, 그  잠은 다음날 아침까지 쭉 이어졌다. 그 후로도 한동안 한의원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상태가 쉬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나는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시간을 내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침상에 누워 짧은 잠을 청했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사실은 내가 제일 몰라주고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박준 작가의 산문집 내용 중 좋아하여 자주 되뇌는 구절이 있다. 작가는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들어가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소중하고 대단한 존재이니까. 사랑받아 마땅하고,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 존중을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한다.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마음에 들어가는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배울뽈시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