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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31. 2018

배울뽈시로

엄마의 맛


 토요일 오후, 긴 연휴의 시작이다. 이번 명절에는 나도 처음으로 연휴 5일을 모두 쉬게 되었다. 초저녁 잠 한숨을 달게 자고 일어나 청소를 했다. 창문을 열고, 이리저리 늘어진 책들을 모으고, 먼지를 닦았다. 톡톡한 가을 이불을 꺼냈고, 무채색의 이불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산뜻한 거베라 한송이를 머리맡에 두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선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천천히 피어오르며 작은 방을 채우는 은은한 향내를 맡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렇게나 잘 정돈된 방을 보면 엄마는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어릴 때부터 배울뽈시로(배워 버릇으로) 뭐든 시키기 전에 알아서 곧잘 했다고 칭찬을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았다. 고단함과 외로움이 진득하게 내려앉은 엄마의 굳은 어깨를 차마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속상함이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명절이 너무나도 싫었다. 엄마는 명절 내내 웃지 못했고, 나는 그런 엄마에게 찰나의 즐거움이라도 주고 싶어 연신 곁을 맴돌며 조잘거렸다. 엄마의 명절은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고 늦게 끝이 났다. 조용하지만 소란했다. 
 
 연휴가 시작되면 우리는 함께 장을 보러 나섰다. 키가 비슷했던 우리는 나란히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루마를 하나씩 끌었다. 두 개의 구루마가 검은 봉지들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는 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생선가게에서는 조기, 금태, 가자미, 문어, 동태포를 샀다. 정육점에서는 탕국용과 육전용을 나눠 소고기를 샀다. 두부집, 야채가게, 과일가게, 건어물상, 대형마트도 빼놓지 않고 들렀다. 이런 식의 장보기를 두세 번 반복해야 했다. 그러고도 막상 음식을 만들다 모자란 것이 생기면 중간중간 내가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다녀왔다.
 
 추석 전 날, 엄마는 새벽부터 바쁘다. 가스불을 오래 써야 하는 것들부터 시작이다. 단술을 끓이고, 탕국에 쓸 육수를 내고, 나물들을 볶는다.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피어오르면 나도 슬금슬금 일어나 전 부칠 준비를 한다. 엄마는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나는 못 본 체 하고 신문지를 펼쳐 주방 바닥에 여러 겹으로 깐다. 창문은 활짝 열어두고 방문은 꼭꼭 닫아야 한다. 큰 초를 집 여기저기 켜 두어야 기름 냄새가 덜하다. 엄마와 마주 앉아 쉬지 않고 전을 부치면 어느새 커다란 대소쿠리마다 전이 산처럼 쌓였다. 전을 부치는 중간중간 엄마는 문어도 삶고, 떡도 찌고, 설거지도 수시로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에야 음식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다. 우리 3남매가 명절 아침에 입을 옷을 챙기고, 잠자리를 봐주고, 기름기가 내려앉은 집안을 모두 닦아야 했다. 밤이 늦도록 제기를 닦고, 마른오징어를 오리고, 밤을 깎았다. 엄마는 이렇게나 많은 일들을 매달 반복했다. 우리 집은 명절 2번을 포함해 1년 동안 13번의 제사를 지냈다.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본 적도 없는 시댁 어른들의 제사를 모두 맡아서 준비했지만 어느 누구도 엄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어린 내 눈에 그들은 그저 꼬투리 잡을 생각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불길한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가 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엄마는 우리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불을 꺼 자는 척을 하게 한다.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인다. 잠시 후 방에 불이 켜지고 진한 술냄새가 진동한다. 기분 나쁜 시선이 내리 꽂힌다. 심장이 요동치고 눈꺼풀이 떨린다. 나는 발끝까지 힘을 주고 이불을 움켜쥔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 주기를 바라며 그가 눈을 뜨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눈을 뜨지 않는다. 하지만 기어이 깨운다면 지체 없이 일어나야 한다. 괜히 시간을 끌어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밤은 더 길고 괴로워진다. 그러면 엄마는 더 많이 울게 된다. 


 명절의 레퍼토리는 매번 똑같았다. 음식을 시작으로 인사, 청소 같은 걸로 트집을 잡지만 결국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밤새 벌을 세우는 것이다. 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저항할 힘이 사라진다. 그때의 우리는 무기력했다. 우리는 그가 술에 취해 휘두르는 폭력적 언어와 행동에 매번 몸과 마음이 찢기면서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얼른 시간이 가서 그가 잠에 들기만을 바랬다. 15살이 될 때까지 명절마다 매번 반복되던 일이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로 명절을 지내러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근무 스케줄을 짤 때는 나서서 명절 근무를 자처했다. 연휴에 근무를 하면 명절 당일 하루만 쉬게 되니 밀린 잠만 자도 하루 정도는 금방이었다. 매번 시끄럽고 불쾌한 명절을 보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강렬했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도시의 한산함이 나에게는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연휴를 모두 쉬니 나도 조금은 다르게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는 토요일에 해두었고, 일요일에는 이것저것 조금씩 장을 봤다. 송편과 전 3가지, 고사리나물과 갓 지은 밥으로 간소하게 상을 차리고 향을 하나 피웠다. 제사상차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추모했다. 탕국 대신 생선전을 넣어 전 찌개를 끓였다. 엄마가 해주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나도 제법 맛을 낼 수가 있다. 고사리나물을 크게 한 줌 집어 입에 넣으면 구수한 엄마 맛이 난다. 포근하고 쌉싸름한 사랑의 맛. 탄수화물과 나트륨과 지방이 뒤섞이고, 사랑으로 가득 버무려진 우리 엄마의 맛이다.
 


 월요일부터는 매일 10km씩 달리기를 했다. 생애 첫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하는 벼락치기 연습이기도 했지만, 실은 하루 종일 햇볕을 쬐지 않으면 마음이 또 한없이 가라앉을 것이 뻔했기에 선택한 나름의 조치였다. 명절이라 그런지 석촌호수는 가족단위로 산책로를 걷는 이들로 붐볐다. 나는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홀로 달리기를 했다. 엄마가 보고 싶은 하니처럼 속으로 엄마 엄마 외치며 뛰고 또 뛰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찌개를 데웠다. 짜고 뜨거운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룩후룩 삼켰다. 하지만 배부르게 밥을 먹어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고 시렸다. 자다 깬 흐린 눈으로 주방을 보면 찌개를 데우는 엄마의 뒷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긴 연휴가 드디어 끝이 났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냉장고에는 명절의 잔상이 남아있지 않다. 몇 주 뒤면 나는 배울뽈시로 청소도 잘 해두고, 머리도 단단히 올려 묶고 엄마를 만나러 갈 것이다. 엄마의 맛이,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그 달고 짠 사랑의 맛이 유독 사무치는 10월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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