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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Nov 02. 2018

경희에게


엄마. 엄마. 엄마!
당연한 얘기 같겠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는데도 어쩐지 무뎌지지가 않아.
엄마, 나는 이제 32살을 2달 밖에 남겨두지 않았어. 며칠 뒤면 엄마와 처음 만났던 날이 돌아오고, 겨울을 지나고 나면 또 엄마가 없이 한 살 더 나이를 먹게 돼. 시간이 너무 안 가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무서워.

엄마, 올해 생일을 앞두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를 생각해봤어. 엄마가 나를 몇 살에 낳았는지, 엄마가 우리 곁에 그대로 있었다면 올해는 몇 살이 되었는지 계산해봤어. 스물아홉, 참 예쁜 나이였더라!
그렇게 예쁜 나이에 엄마가 겪었던 일들을 감히 내가 다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아직도 이따금씩은 내가 왜 태어나서 우리가 이런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지 의미 없는 고민들을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의 두 번째 딸로 태어난 것이 참 잘된 일인 것만은 확신하고 있어.
남들과 조금 다른 유년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은 많이 아팠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아주아주 소중한 기억들이거든.

엄마, 나는 엄마와 나의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을 써보려고 해.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반짝이던 순간들, 칠흑같이 어두웠던 시간들을 지나 엄마와 헤어진 후에 내가 홀로 세상을 견뎌낸 이야기들을 말이야. 
우리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가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대. 나도 어쩔 땐 '정말 우리가 그런 일을 겪었나?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만큼 아득한 기분에 빠져들어. 

글을 쓰다 보면 옛 생각이 많이 나. 어떤 기억은 글로 옮기기가 너무 힘이 들고 어려워서 노트를 덮어두고 엉엉 울기도 했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어. 
하나의 글이 정리될 때마다, 오랜 시간 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나를 갉아먹던 어떤 것이 이제는 내 어깨를 다독이고, 나를 떠나 멀리 날아가는 기분을 느껴.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해보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마냥 어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니까. 한겨울 같았던 시간 속에서도 두꺼운 겨울눈 아래 흐르는 시내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흘렀고, 반짝였고, 봄은 돌아오니까.

이 정도의 나이가 되고 나니 누군가와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엄마가 우리에게 준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어.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서툴고 두렵기만 한 겁쟁이지만, 그래서 자꾸만 넘어지고 울기를 반복하지만. 엄마 그래도 기억하지? 나는 어릴 때부터 잘 넘어지지만 또 잘 일어나는 애였잖아. 자꾸 넘어지면 자꾸 일어서면 되는 거지 뭐. 그렇지?

엄마, 사실 나는 매일 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얼른 엄마가 있는 그곳으로 가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부터는 엄마가 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려 해. 
엄마가 늘 바랬던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마음을 주고받고도 싶고, 언젠가는 엄마처럼 좋은 엄마도 되어보고 싶어. 엄마가 바라는 건 우리가 빨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많이 행복해지는 걸 테니까. 많이 많이 행복해져서 엄마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 말이야. 그런 다음에 우리 행복 앞에서 만나자. 엄마의 행복 앞으로 내가 뛰어갈게.

열여섯의 경희, 스물아홉의 경희를 지나 쉰여섯 번째 가을에 경희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우리 엄마 경희의 시간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의 모든 처음을 늘 함께해 준 우리 엄마 경희. 

나의 가장 깊고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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