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눈으로 선한 낮달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나는 괜히 입을 삐죽 대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이 입 안에서 불규칙하게 헤엄을 쳤지만 어느 말로도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꼭 우리 같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움직임은 소용이 없는 줄도 모르고. 거친 물장구에 부서진 파편들이 이리저리 규칙 없이 튀어도 막상 앞으로는 나아가기가 힘든 그런 헤엄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만 가라앉게 하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밤 제3 국의 언어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며 웃기고 울리는데 막상 만나면 둘 다 조금 말이 없어진다. 그는 조금 충혈된 눈알을 천천히 굴리고 나는 그런 그를 보다가 옅게 웃을 뿐이다.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잡을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냐고 서로에게 묻고 겨우 아는 몇 개의 단어를 더듬거리다 웃고 만다. 그를 만나러 가는 어느 날엔가 내 귓가에는 별이 지고 있다는 노래가 흘렀고 그냥 웃으면서 보내주라 하네- 하는 가사가 그 날 저녁 내내 어깻죽지에 앉아 나를 짓눌렀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던 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다 온 그가 먼 나라의 초콜릿을 흔들며 웃고 서 있다.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열거된 그 알록달록한 포장들 중 하나를 벗겨 날름 입 속에 집어넣고 오물거리면 '아유 참 달다' 하고서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하는 걸.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그 몰캉한 조각이 어느 틈엔가 목구멍으로 꿀떡하고 넘어가 버리면, 달고 진하고 그러나 무익한 초콜릿 같은 순간들이 어설프게 나를 붙잡는다.
헌데 왜 영혼이나 수호자 같은 영명한 단어들이 수시로 내 곁에서 맴도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이에 대한 깨끗한 기대감이나 순진한 호감 같은 것은 이제 나와 별로 어울리지가 않는데도, 늦은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나도 이제 그만' 하고 눈을 감으면 자꾸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부풀어올라 둥둥거린다.
우리는 왜 자꾸만 각자의 옛 일을 서로에게 떠벌리고 연민일지 고통일지 모를 눈빛을 주고받다가 술잔을 부딪힐까. 어색한 그 공기 속에서 우리가 맞잡은 것이 서로의 불안일까 안도일까. 혹은 위로일까 동정일까. 다만, 손가락 사이로 그 어느 것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더 꼭 서로에게 깍지를 끼우는 것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듭되는 자조적 의문들의 가장 끝에 남는 것이 무얼까.
느낌표와 마침표와 물음표 중 어떤 것을 찍게 될까. 어쩌면 말 줄임표를 흐리게 늘어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