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Feb 20. 2019

자유롭게

요즘의 나는 평소에 하던 것을 거의 하지 않으며 생활패턴이 제 멋대로 엉켜있다. 강박처럼 하던 운동도, 시간이 날 때마다 펼치던 책들도 모두 한편으로 밀어두었다. 음악도 별로 듣지 않고 글도 거의 쓰지 않는다. 매일 하던 것을 하지 않으니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조바심과 함께 묘한 안심이 동시에 드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실은 조바심이 나는 것을 억누르려 매일 똑같은 것들을 반복적으로 하며 빈 시간을 메우려 애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생각보다 막연하지만 불안하지는 않고, 시간이 너무 없는데도 시간이 너무 안 가는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다.

 



예전의 나는 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일을 하거나 타인을 대할 때에 억지로 마음을 끌어올려 시간을 보낸 후, 혼자의 공간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그 날의 일과를 어떻게 보냈든 간에 내 마음은 어김없이 깊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며 가라앉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나의 평상심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낮은 것이라 여겼다. 이건 우울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특별히 병든 것도 아니라며, 나를 제외한 모두가 괜찮아 보이지만 실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들 각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거나 혹은 모른 체했다.



친구와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그랬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말할 만큼 똑 부러지게 일을 해낸 날에도 정작 마지막엔 늘 이상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소맷단으로 눈물을 찍어내었다. 사람들은 내가 대단히 긍정적이거나, 아주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아주 우울할 거라고 짐작했고, 처음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은 내가 아주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칠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아주 우울하지도 대단히 긍정적이지도 않은 중간 또는 약간 낮은 지점의 사람이었고, 나중에 그들은 자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며 신기해하거나, 기뻐하거나 혹은 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나는 상대가 나를 대하는 말투나 사소한 눈빛 같은 것에도 내 안의 평온이 흔들리곤 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헤아리느라 바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내 마음의 상태가 사랑일 때도 미움일 때도 나는 상대방의 사소한 말투나 눈빛에 울고 웃었고, 그들의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나 말에도 여러 의미와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짐작하거나 단정 짓거나 혹은 실망해가며 가슴을 졸였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인데, 나는 내 마음은 뒤편으로 밀쳐 두고 상대의 마음만을 궁금해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졌을 때에도 나는 몹시도 조바심이 나서 매일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대체 매번 왜 이럴까. 하며 모든 화살을 나에게 집중시켰다. 내게 몇 없는 내 사람이라 여겼던 이들이 등을 보일 때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니는 속이 빈 조개껍질이 된 것만 같았다. 속이 텅 비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린 조개껍질. 그들이 내 짭조름한 알맹이만 쏙 빼먹고 달아나 버린 것 같아 몹시도 속이 상했다.




하루가 1년 같이 길게 느껴지는 날에는 방금 헤어지고도 금세 서로를 그리워하고, 한 달 전만 해도 서로의 세계에 없던 존재가 지금은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서로가 챙겨준 음식을 각자의 집에서 먹고, 식사를 챙기고 기분을 공유한다. 늘 상대의 기분만 살피며 내 기분을 스스로 망치던 내게 "너는 어떤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왔다. 막상 그런 사람이 내게 오니 나도 모르게 "응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음속 평온이 가장 중요한 나를 알아채고 편안하게 해 주려 애쓰는 사람이 오니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의 여러 모습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다.



며칠 전 그와 함께 바다를 보러 다녀왔다. 나는 조용한 모래사장 위 수 없이 펼쳐진 빈 조개껍질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려 눈을 이리저리 열심히 움직였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제각각인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하나 둘 집어 올려보니 모두 보석같이 각각의 예쁨이 묻어있다.

빈 조개껍질처럼 텅 비어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진 것 같던 내 마음을 걷어올려준 이가 내 손에 그 예들을 꼭 쥐어주었다. 짭조름한 알맹이는 빠져버린 지 오래지만, 파도와 모래에 깎이며 모서리가 부드럽게 둥글려진 그 조개껍질들이 어쩐지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바다를 보며 사랑을 말했고, 파도소리를 함께 들었으며, 그 날 그 장소와 썩 어울리는 음악을 배경으로 블루스 비슷한 어떤 움직임을 함께 만들어내었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롭게,

쉽지 않은 세상에서 온전한 서로의 편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https://youtu.be/jax_UocIbLY 자유롭게 - 곽진언

*첨부된 사진은 기타노 다케시 _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 그래도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