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휴직기간 중 설을 맞았다. 서울에 온 이후로 가족과 설을 보낸 적은 없었다.
내 지난 설날들을 떠올려본다. 대부분 조금 조용하고 둔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평소와 달리 듬성듬성 몇몇만 앉아있는 버스에 올라 일터에 나가곤 했다.
평소와 달리 찾아오는 손님이 뜸한 날이니 출근이 가능한 최소한의 인원만이 나와서 주방을 지켰다. 그중 나는 나서서 먼저 근무를 자청하는 편이었다. 당시 우리 주방에는 우선적으로 기혼자들을 제외, 그다음은 막내들을 제외시켜주는 암묵적 룰이 존재했었다. 나는 막내도 기혼자도 아닌 애매한 중간 사원. 말하자면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모든 메뉴를 만들 수 있으며, 홀과 주방을 컨트롤할 약간의 지위가 있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오너와 주방장의 입장에서는 중간인이 자처해서 근무를 해주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으니 모두 나의 휴일근무 자청을 모두가 수락할 수 있는 카드가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나를 따라 출근하겠다는, 집에 있는 것보단 차라리 근무가 나을 것 같다는 막내까지 있으면 딱이다. 그러면 조금 한가한 날 정도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하루를 그럭저럭 명절이 아닌 듯 흘려보낼 수 있었다. 아주 가끔은 약간의 금일봉을 따로 받는 날도 있었다.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지 않거나 일을 하지 않는 중에 명절을 맞은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강아지와 한강에 갔다. 당시 살던 곳이 한강과 가깝던 가깝지 않던 나는 생수 한 병과 이어폰, 강아지의 응아 봉투를 챙겨 강아지와 한강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우리 개는 그때 아주 많이 젊고 튼튼한 하체를 자랑하는 골져스 바디의 푸들이었으므로 나보다 더 잘 걷고 잘 뛰었다. 상도동에 살 때엔 주로 63 빌딩 앞의 너른 잔디밭을 향해 걸었고 잠실에서는 석촌호수를 지나 롯데월드를 지나 잠실나루 나들목으로 갔다. 강아지가 나가고 싶지 않아 하는 날에는 혼자서 간식과 책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반포공원이나 천호공원까지 다녀오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에는 운동복을 챙겨 입고 달리고 걷고 하다가 흐느적 해진 몸을 이끌고 해가 진 후에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한강이 주는 한적함을 좋아한다. 평일의 한강공원은 사람이 별로 없다. 멍하니 앉아 이슬 톡톡을 홀짝이며 책을 읽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면 혼자라도 참 좋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잔디밭에 가방을 베고 아무렇게나 누워도 좋았다. 잔디의 감촉을 느끼며 누운 시선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빛의 반사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역시 사람은 자연으로.. 같은 내 안의 시골 할머니스러움이 피어올랐다. 어쩌면 혼자라서 더 좋았던 날도 다수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많은 것(커플 자전거, 치맥, 연애 기타 등등)이 있었지만 혼자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곳이 한강이기도 했다.
연애를 할 때는 어땠나. 연애를 해도 명절 당일을 함께 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각자의 서울 애인들을 본가로 돌려보내고 조금 뒤숭숭해진 여인들이 이태원으로 모여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태원은 다른 거점보다는 명절 당일에도 영업을 하는 식당들이 여러 곳 있으니 여인들이 모일 곳으로 최적이었다. 시골에서 나름의 꿈과 사연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 그래도 사투리를 잘 고치지 못하는 그녀들과 나는 회사 욕, 애인 욕, 구애인 욕, 학교 욕 등등 다양한 주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사투리로 웃고 떠들며 최대한 그 날이 명절이 아닌 듯 보내려 애를 썼다. 명절이니까 일을 안 하고 다 같이 모일 수 있는데도 우리는 왜인지 명절에 그곳에 그렇게 모인 것이 명절 덕이 아닌 명절 탓인 것 같은 조금 언짢은 기분을 공유해야 했다. 그렇게 몇 시간 웃고 떠들고 나면 슬금슬금 피로가 몰려왔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집순이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으므로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맴맴거렸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조금 마음이 떨어졌다.
한동안 누군가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아주 힘든 시기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관계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불편함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내게 무거운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그 피로감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어지는 시기가 왔다. 너무 보고 싶은데 너무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한 명 두 명 생겨날 때마다 자꾸만 내가 너무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꼈야 했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했다.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어떤 관계의 어그러짐의 원인을 찾아보면 그 사람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닌 애매하고 사소하지만 제때에 풀지 못한 순간들이 왕왕 떠올랐다. 나는 잘 참아보려 하지만 한계가 왔을 때는 용서를 잘해주지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딱 서있지 않아서 어쩔 때는 너무 관대하거나 멍청하게 굴었고, 어쩔 때는 너무 매섭고 모질게 굴었다. 그래서 떠나보낸 이가 몇일까 세어본다. 하지만 오래된 관계에서 주는 어떤 편안함이 꼭 시간의 쌓임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되어서인지 예전보다는 지나친 관대함 혹은 오만함을 덜 발휘하게 되는 서른넷이 되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을 뒤적이다 부서질 줄 알면서도 늘 최선으로 다가오는 파도를 보며 아주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떠오른다는 짧은 글을 보았다. 내 눈앞에 몇개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우리는 오래되고 가까웠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여러 감정이 뒤엉켜 부서지거나 거품이 되어 사그라들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경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으로 떠오른 얼굴은 B. 이제는 명절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지만 모임에서 여러 이름들이 뒤엉키다 그녀의 이름을 등장할 때마다 늘 사람들이 바라보는 얼굴은 내 쪽이었다. 나는 이제 조금 머뭇거리며 '나도 잘 몰라. 잘 지내겠지'라는 말을 흐리며 맥주잔을 만지작거리게 되었지만 늘 진심으로 그녀의 안녕과 행복과 부와 명예와 튼튼한 사랑을 온 마음으로 바랬다. 늘 나보다 앞서고 기쁘고 들뜨고 즐거운 그녀의 곁에서 나도 참으로 좋은 시간들을 많이 보냈으므로, 내 마음에 무너질 수 없는 어떤 벽이 생긴 것과는 별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혼자의 마음뿐이더라도 꼭 그렇게 그녀의 남은 생을 응원하고 싶다.
이번 명절은 다시 가족과 함께 보내는 두 번째 명절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떡국 한 그릇씩을 나눠 먹었다. 비록 헝클어진 머리에 모두 내복 바람이었지만 세배를 받고 세뱃돈 주는 생색을 내려 7살과 9살이 듣고 있기에는 조금 좀이 쑤실만한 덕담을 길게 하며 어른 흉내도 내어보았다. 그리고는 또 아무렇지 않게 금세 일상이다. 떠들썩하지 않게 보내는 쉬는 일요일 같은 느낌으로 포켓몬 색칠하기와 낚싯줄에 비즈를 엮어 팔찌 만들기를 하고 방청소를 하고는 각자의 오후 일과를 위해 아이들은 워터파크로 나는 익숙한 카페로 왔다. 평소보다 조금 한적한 이 곳에서 반가운 이를 만나 나란히 앉아 여러 편의 글을 읽고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이렇게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글을 쓰는 것.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름들을 소리 내어 발음해보는 것. 내가 누릴 수 있는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이 며칠간 아주 많이 아팠던 심신을 한결 회복시켜준다.
내게는 내 마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주는 어떤 이의 마음의 결이나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 함께 있을 때나 있지 않을 때에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온도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금전적 처지보다는 우선이다. 불안이나 쓸모없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관계 속에 내가 자연스레 스며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오늘은 그냥 너랑 웃고 싶다는 도깨비 씨의 말처럼, 이런저런 현실적인남들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고 오늘 나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밀어주고 끌어주며 내 심신의 안정을 도와주고 있다고 믿는다.
허리가 끊어지게 장보기와 음식 준비와 뒤처리를 하던 명절은 이제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유년의 명절은 날짜를 세고 싶지 않아 달력을 뒤집어버리는 시간이었다. 세상이 멈추거나 갑자기 큰 재앙이 오면 어떨까, 과거의 예언자들이 말했다던 밀레니엄 종말이라던가 빅뱅 같은 것이 우리 동네에만 오면 어떨까 하고 기대 아닌 기대를 걸어보는 시간이었다. 가장 소란하고 가장 어둡고 가장 치열했던 그 시간이 모두 지난 후 내게 남은 것이 이런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몇개의 소재라고 생각하면 기뻐야 할까, 슬퍼야 할까.
사람 눈이 앞에 달린 이유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어느 영화에선가 보았다. 그날 밤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이 남들보다 조금 더딘 이유를 생각하다가 고민하던 수업 하나를 야심차게 등록해버렸다. 앞으로 빨리 가려고가 아닌, 매듭짓지 않은 과거를 잘 정돈하려고. 그런 후에 나의 속도를 다시 한번 찾아보려고. 늘 그랬지만 또 한 번 그다지 돈은 되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괴롭고 외롭지만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보려 한다.
올해는 세상의 모든 경희와 경희의 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중나는 한 중간 정도면 참 좋을 것 같다. 새해 복을 받자 받자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