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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07. 2020

멈춘 시간 속에서

퇴사 후 마지막 월급을 받은 것이 오늘로 딱 한 달 째다.

아무 생각이 없이, 혹은 너무 많은 생각에 떠밀려 결정한 퇴사는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비슷한 일을 비슷한 급여와 근무조건으로 구할 수 있는 직종에 10여 년간 몸담아 왔고, 그만큼 잦은 이직을 경험해왔다. 이제는 나이가 조금 걸림돌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이것저것 길게 늘어지는 이력서도 가지고 있다. 다만 새 시작에 대한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일을 할 때는 매일 날짜와 시간에 아주 민감하게 행동해야 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같은 질문은 내 입에서 나올 일이 없었다. 매주 아르바이트생 열댓 명과 직원 3명의 스케줄을 정하고, 펑크가 나면 대체인력을 집어넣고, 매일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비우고 다시 채워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재료들의 유통기한을 일일이 확인하고, 하루 동안의 매출을 정리하고 시제를 맞추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사칙연산만 잘하면 되는 정도의 산수인데도 매일매일 숫자들 속에서 허덕이는 시간이었다.

종일 너무 많은 말을 듣고, 너무 많은 대답과 질문을 해서 집에 오면 아무 말도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전함을 위해 나는 또다시 어떤 이의 목소리를 찾아 듣거나,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혼잣말들을 보며 빈 곳을 메꾸어야만 했다.


요즘은 멈춘 시간 속에 갇혀있다는 기분을 종종 느낀다. 오랜만에 쉬어보니 역시 백수가 적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도, 아무것도 결정이 되지 않는 이 시기, 이 감정에 매몰되어 버렸다는 기분을 자주 느끼게 된다. 일을 다닐 때보다 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지만 그럴수록 그들과 나 사이의 틈이 깊어져 그 사이로 나만 빠져버리는 기분. 그 좁고 얕은 틈이 어쩐지 내게만은 너무나도 깊고 아득해서 손 쓸새 없이 빨려 들어가 버리는 아주 지독하고 하찮아진 마음에 스스로를 자꾸만 떠밀어 넣게 된다.


모두 떠난 후에 주어지는 몇 시간의 고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은 가정에서 나는 쌀을 씻고 먼지를 훔치고 밤사이 무거워진 몸의 기름기를 천천히 씻어낸다. 찬바람을 맞으러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이부자리로 들어가 시간과 나를 함께 죽이기도 한다. 책장을 빙그르 돌려보며 읽다만 책들 중 하나를 꺼내 활자들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몇 번이나 봤던 영화를 배경음처럼 틀어두고 sns를 들여다보며 돌아오지 않은 시간 속으로 뒷걸음질을 치기도 한다. 바깥은 폭풍인데 나만이 고요한 폭풍의 눈 속에 갇힌 기분이 들면 나는 이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언제 휘말릴지 모르니 정신을 똑똑이 차리고 긴장만 해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먼저 폭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결심해야 할까.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때로는 수분이 없어서 힘없이 바스러져 흩어지는 스콘 조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스콘의 소명은 그저 가만히 쇼케이스에 누워 자신을 선택해줄 소비자를 기다리면 되는 걸까. 아니다. 물 없이도 밀가루와 잘 뭉쳐지기 위해 버터가 많이 많이 필요하고 발효를 거치지 않고도 부드럽기 위해 고온에서의 힘겨운 시간도 감내해야 한다. 혼자서는 특별한 맛이 없지만 어느 차와도 무난하게 어울리고 곁들이는 재료에 따라 아주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깊은 허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며칠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어느새 시간은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하고, 부스러진 스콘 조각을 모으며 마른침을 삼킨다. 간간이 만나는 이들의 얼굴이 내 곁에서 먼지처럼 떠다니는 시간이 지속되고, 나는 이따금씩 네모들이 나를 누르는 꿈을 꾼다. 어느 밤엔가 내 곁에 놓인 조그맣던 네모가 점점 높아져 벽이 되더니 네모의 네 모서리가 모두 닿을 만큼이나 크고 아득해져서 아무도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 어느 밤에는 똑같이 생긴 수십 개의 네모난 문들 중 어디를 열고 들어가야 할지 몰라 밤새 골목을 헤매기도 했다.


지난밤에 또다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아득하게 쌓인 색색의 네모난 스펀지들을 강아지와 함께 끝없이 뛰어내려 가야만 했다. 천진하고 성실한 나의 개는 늘 나보다 먼저 그 스펀지들을 훌쩍훌쩍 뛰어내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심장이 꽝 하고 떨어진다. 그 밑에,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를 두려움에 나는 매번 눈물을 질금질금 거리며 두려워하는데 내 개는 살아온 연륜일까, 끝을 모를 천진일까. 겁도 없이 자꾸만 자기 키보다도 서너 배는 되어 보이는 스펀지들을 겅중겅중 망설임 없이 뛰어내려 가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개의 줄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으악 가지 마! 가지 마!' 호통과 절규의 중간쯤 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  셀 수 없이 많은 스펀지들을 뛰어내렸다. 그러다 나는 너무 지쳐서 뜨거운 숨을 후후 내뱉으며 스펀지에 널브러져 이제 더는 못 갈 것 같다며 엉엉 울었는데 그 틈에 그만 내 손에 말려있던 개줄이 스르륵 풀려버렸다. 이쯤 되면 토끼인지 개인지 정체를 의심해야 할까, 개의 늙어진 몸이 꿈속에서 회춘할 걸까. 내 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혼자서 또 폴짝! 나는 심장이 아득한 저 아래까지 곤두박질치는 기분을 느끼며, 떨어져 죽었을 것만 같은 개의 마지막을 확인하려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스펀지 위를 기어갔다. 눈물범벅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가늘게 실눈을 뜨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것은 바닥이다. 가장 내딛기 어려웠던 마지막 발을 내디디니 너르고 편평한 바닥이 있었다. 개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고 잔디에 몸을 비비고 꼬리를 흔들고 혀를 내밀어 보이며 크게 웃는다. 안도와 알 수 없는 희망에 금세 또 마음이 요동쳐서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는 목덜미와 이마를 적신 땀을 소매로 닦아내고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묶었다. 그러자 아침이 왔다. 


아침이 밝아왔다.



주효 - Dreamer's Dream

https://youtu.be/D6bl8KOqW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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