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_산굼부리

작은 화산의 흔적을 찾아

by 자유인

제주도는 느낌상 반(半) 외국의 정서가 있다.

분명히 대한민국 영토인데 시내는 평범한 지방 중소도시의 느낌이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이국적 느낌, 한반도 내륙에서 느끼기 힘든 감성이 있다.

많은 관광객이 오는 곳이지만 그들 중 한 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제주에 여러 번 왔지만 한 번도 못 간 '산굼부리'에 갔고 한적함이 즐거운 곳이었다.

입구에서 전망대로 향한다. 보통 오름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잘 정돈된 계단을 조금만 오르면 분화구가 나오는데 그 풍광이 장관이다. 스케일이 남다르니 하는 정도의 장대하지는 않지만, 색다름에 매료되기 쉽다. 산굼부리의 어원이 산+굼부리인데, 산은 그야말로 산(山)이고 굼부리는 구멍(분화구)이란 뜻으로 '산에 있는 분화구'란 뜻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위험함이 엄습해 온다. 겁난다. 후들거리는 하체를 지탱하고 최대한 팔을 뻗어 사진에 담아보기에도 버겁다. 시기를 알 수 없는 오래전에 용암으로 부글부글 했던 곳은 수풀로 우거져있다. 이름 모를 새 울음만이 정적을 깰 뿐이다.

IMG_4855.JPG <산굼부리 분화구>

제주도에는 360여 개의 기생화산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화산은 분화구를 갖지 않거나 분화구를 갖고 있더라도 대접을 엎어놓은 듯한 형재 또는 말굽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산굼부리 분화구는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 없이 폭발이 일어나 그 구멍만이 남게 되는 마르(Marr) 형 분화구로서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회귀한 형태다. 산굼부리 분화국 안에서 자라는 식물은 같은 제주도의 한라산에 있는 식물과도 격리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므로 식물 분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고 지질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 보존되길 바란다.



IMG_4860.JPG <전망대 옆 산책길>

전망대는 사람들이 산책하기 좋게 잘 조성되어 있다. 한 사람이 앉기 좋은 흔들 그네에 앉아 사색하기 좋다. 눈을 감고 있으면 오롯이 나만의 사색의 세계에 빠진다. 저 멀리 사람들의 다음 행선지 계획하는 소리가 소곤거리고, 바람에 이는 수풀의 흔들림을 몸소 느낀다. 각종 유튜브의 격한 떨림과 호소, 앞으로 어떻게 사나하는 쓸데없는 걱정, 자동차소리에 지친 영혼을 비누 없이 물 없이 세수를 가한다.



IMG_4879.JPG <꽃굼부리_영화 '연풍연가' 촬영지>

전망대 옆에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생뚱맞게 전통 제주의 무덤이 몇 기 자리 잡고 있다. 무슨 연유일까?

원래 여기에 몇 가구가 삶을 영위한 흔적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냥 잘 조성된 공원의 느낌이다.

장동건과 고소영이 주연한 99년 영화 '연풍연가' 촬영지로도 쓰였다는 곳이다. 넓은 잔디를 지나면 억새풀이 나오는데, 풀 가운데 사람이 둘 정도 지나다닐 공간이 있어 분위기 잡고 싶은 연인이라면 사진 담기 좋다. 몇몇 관광객들이 장소를 선점한 채 많은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인다. 열심히들 산다.

IMG_4829.JPG <사슴상_ 전설이 있다_사슴상위 점은 렌즈에 오염이 돼서 찍혔다>

갈대밭을 지나 전망대방향을 향하여 외로이 서있는 뿔 달린 사슴상이 있는데 왜 거기에 서있을까?

산굼부리의 사슴상은 제주 신화 속 신선들이 타던 백록의 신성함과 천연기념물로써의 생태적 가치를 결합하여 세워진 상징물이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릴 때 사슴상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마치 전설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역시 보인다.



산굼부리는 걷기 좋고 부담이 안된다. 사색하기 좋다. 사진 찍고 놀라고 대놓고 세팅해 놓은 곳이 있지만 너무 흔하다. 입구 쪽에 카페도 있지만 별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제주 바람을 느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 혼자 안 왔어도 각자의 시간을 들여 눈을 감고 제주의 바람과 대화해 보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잠시 잊었다.

출처모를 바람과 세상의 언어가 아닌 우주의 언어로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눠보았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