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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y 06. 2022

블로그 1일 1포스팅의 굴레에서 해방!

블로그 체험단은 후회로 남고...

 4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 블로그 1일 1포스팅을 목표로 했었다. 매일 짧은 글이라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아빠 잃은 슬픔이 블로그 이웃의 공감과 댓글, 응원으로 조금씩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시 일을 쉬고 있던 터라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가끔 영화를 보며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하루하루 블로그에 글을 쓸수록 내 책을 쓰고 싶다는 낯설고 큰 꿈이 점점 간절해졌다. 



 3년 가까이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첫 책 출간이라는 꿈을 이뤘다. 국어 강사에서 논술쌤으로 재취업에도 성공해서 전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도 블로그는 내 일상의 소중한 기록이자, 내 논술 수업을 알리는 일등공신이 되어 충분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네이버 블로그 인플루언서가 되어 볼까, 블로그로 돈을 좀 벌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100일 단주 실천과 함께 100일 1일 1포스팅을 다시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2주쯤 지나서 나 스스로 굴레를 만들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날은 아주 오랜만에 블로그 체험단으로 미용실에 다녀온 날이다. 집앞에 착한 가격으로 염색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있어서 가는 길이었다. 무슨 우연인지 그날은 내 이메일을 통해 한 건, 블로그 댓글을 통해 한 건씩 미용실 체험단 제의가 왔다. 염색을 한 후 펌과 커트, 클리닉을 순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머리를 풀세트로 관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수락하고 이틀 이어서 미용실 체험 예약을 마쳤다. 



 평소에 원고만 줄 테니 리뷰를 올려달라는 제안을 수도없이 받는다. 내 블로그 이웃이 8,000명이 넘었고 4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니 광고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돈을 꽤 벌 수도 있을 것 같아 살짝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나 상품을 무조건 좋다고, 업체에서 주는 원고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양심에 찔렸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 진심을 다하는 논술 수업,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 등으로 채워진 내 블로그의 순수성을 흐트리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이번 경우는 달랐다. 내 필요에 의해 직접 경험해보고 글을 쓰는 것이니 거리낄 게 없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미용실 두 곳에서 타이밍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행운 같아서 그날 저녁엔 복권을 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그날은 정말 내게 복이 들어오는 날인 것 같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틀 동안 몰라보게 예뻐질 내가 기대되었다. 공짜로 내 머리를 만져주는(물론 공짜는 아니다. 내가 쓴 블로그 글이 그 업체의 광고가 될 테니까.) 미용실에 대해 정성껏 글을 써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깔끔한 헤어숍에서 친절한 대접을 받으며 펌을 하고 커트를 했다. 비교적 젊은 디자이너라 능숙해 보이진 않았지만 꼼꼼하게 정성을 다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었다. 3시간 가까이 공을 들인 머리인데 예뻐보이기는커녕 영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마음에 드냐는 말에 대강 얼버무리듯 대답하고 부랴부랴 서둘러 헤어숍을 빠져나왔다. 원래 계획은 머리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맘에 들지 않은 머리로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아졌다. 집에 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영 별로다. 더 지체하면 약속했던 블로그 포스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노트북을 켜고 찍어온 사진에 술술 마구마구 써내려갔다. 봄맞이 기분 전환이라는 말로 에둘러서 낑낑대며 포스팅을 마쳤다.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곧바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아버렸다. 



 역시 공짜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께름칙한  마음으로 다음날 클리닉 서비스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염색과 펌으로 상한 머리를 클리닉으로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때 전날 갔던 미용실 블로그 체험단 담당자의 문자가 왔다. 몇 가지(예를 들면 머리 잘 하는 곳) 키워드를 빼먹었다며 다시 넣어서 블로그 포스팅 글을 수정해 달라는 요구였다. 안 되겠다 싶어 통화까지 하게 되었다. 내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내가 응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포스팅을 하긴 했지만 지금 머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솔직히 머리 잘 하는 곳이라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다행히 담당자는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주었고 미용실과도 통화해서 내 의견을 최대한 정중하게 전달했다. 결국 내 포스팅은 내리기도 결정했다.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블로그 체험을 한다는 것이 적이 불편해졌다. 다행히 클리닉 서비스는 만족스러웠고 전날 상했던 머리가 어느 정도는 나아져서 지금은 잘 손질하면 봐줄만은 하다. 두세 달 잘 견뎌보기로 했다. 100일 단주를 마치는 내 생일에 오랫동안 내 머리를 믿고 맡겼던 디자이너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는 살도 좀 빠졌을 테고 단주 성공 자축 저축액이 100만원이나 되니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하러 가야지. 



 블로그 체험단을 하며 이틀 동안 블로그 1일 1포스팅을 놓쳤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 글은 정말 쓰기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블로그 체험단이라고 하니 신경은 써야겠고 돈을 받는 서비스는 아니니 그닥 반가운 손님은 아니고… 내 자격지심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당당히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누군가는 이런 기분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공짜 좋아하다가 본전도 못 건진 느낌이랄까.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던가, 나는 아직 블로그 체험단을 할 깜냥이 못 되는 것 같다. 



 오랜만의 블로그 체험단은 후회로 남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쓰고 싶지 않을 글을 쓰지 않겠다. 매일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으로 맘에 들지 않은 글을 수정도 하지 못한 채 블로그에 올리지 않겠다. 시간에 쫓겨 귀한 장면을 놓치고 오래 봐야 할 것들을 지나치고 싶지 않다. 나의 템포에 맞게 걷고 읽고 쓰며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부터 블로그 1일 1포스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드라마 제목처럼 오늘 난 나를 "해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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