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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20. 2023

영화다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를 싫어할 만한 이유, 그래도 좋은 이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개봉 당시 큰아들이 보라고 권했지만 시간을 놓쳤던 영화다. 얼마 전 웨이브에 올라와 있어서 조만간 봐야지 하다가 드디어 어제, 여유롭게 혼자 노트북으로 감상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좀 놀랐다.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나 싶었다.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면 집중력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좋아할 이유보다 싫어할 만한 이유가 더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왜 좋은 영화인지, 왜 그렇게 이슈가 되었는지 알아내는 데는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부터였다.

☞ 이 영화를 싫어할 만한 이유  

    정신없다.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 그래도 이 영화가 좋은 이유

  신선한 구성과 기발한 아이디어

  양자경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력

  후반부로 갈수록 선명해지는 주제

  가족애 

영화다움



 에블린(양자경 역)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항상 힘들다. 몸이 불편한 친정 아빠까지 모셔야 한다. 게다가 생활력보다는 유순한 성격을 장점으로 가진 남편이 이혼 신청서까지 내민다. 하나 있는 딸은 동성연애자로 엄마의 속을 썩인다. 에블린은 사는 게 힘겹기만 하다. 그렇게 웃을 일 하나 없는 에블린의 현실에 메타버스 세계가 펼쳐진다. 그녀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웃으며 뛰어놀던 어렸을 때의 모습, 엄마아빠와 행복했던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져서 아빠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남편을 선택했던 때, 딸을 낳고 기뻐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현실에 지쳐있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되면서도 궁금하다.



 그녀는 메타버스를 통해 다른 세상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경험하기도 한다. 성공한 배우의 모습이었다가 손가락이 소세지 같이 생긴 모습이었다가 무술을 수련하는 여자였다가 요리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고 느끼고 경험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영화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했다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도 감독의 연출력 덕분인 것 같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우주 중 하나에서 에블린은 돌의 형체로 이미 돌이 되어있는 딸 조이와 만나 대화를 나눈다.


조이: 여기 앉아 있으면 모든 거... 아득하게 느껴져.

에블린: 조이, 내가 다 망쳐서 미안해.

조이: 쉿, 여기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그저 돌이 되는 거야.

에블린: 내가 너무 어리석고...

조이: 하찮고 어리석은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이야. 우리 오랫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 줄 알았고 그와 다르게 주장하는 이들을 죽이고 고문했어.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 그것도 기껏해야 수많은 태양 중 하나인걸. 하나의 우주 속에 그 모든 게 존재하지만 그조차 무수한 우주 중 하나일 뿐이야. 뭔가를 발견할 때마다 반증하는 셈이지. 우리가 하찮고 어리석다는 걸. 다음엔 또 어떤 새로운 발견이 우릴 개허접한 쓰레기로 느끼게 해줄까?

(…)

모든 걸 경험하면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당신이 보고 다른 길도 있었다고 납득시켜줬으면 했어.



 딸 조이가 엄마에게 바란 건 자식보다 먼저, 많은 경험을 한 어른으로서 인생은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길도 있다고 알려줬으면 하는 거였단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우주 어느 곳에서도 절대로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에블린은 딸을 구하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힘을 쏟는다. 조이의 말처럼 인간은 어리석고, 한없이 부족한 존재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다정하고 인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에블린에게 남편 웨이먼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현실에 지쳐서 어느 순간 잊어버렸던 남편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사람 좋게 생긴 웨이먼드를 보면서 우리 남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항상 마음이 급하고 무언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를 느긋하게 봐주고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 우리 남편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든 모든 사람은 사랑스러운 점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힘들고 외롭다고 느끼는 원인 중에 하나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남편, 내 자식의 사랑스러운 점을 생각해본다. 하나가 아니다. 두 개, 세 개,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이 다정하게 나의 부족한 점을 메워가며 지금껏 살아왔구나 싶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인상쓰고 경쟁하고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듯이 다정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내편으로 만들고 힘겨운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독특한 방식으로 건전한 주제를 전달하는 좋은 영화다. 새로운 것을 대하면 언제나 설레고, 뇌가 신선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가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의 진리다. 가족의 사랑만 있으면 이 추운 겨울도 따뜻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고, 힘든 일이 닥쳐도 견뎌낼 수 있다. 좋은 영화를 감상한 덕분에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단단해졌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남편과 아들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오늘은 더욱 다정한 사람이 되어 살아아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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