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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Apr 24. 2023

4월이 가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다음 소희>

젊은이의 안전한 일자리, 어른의 책임!

  개봉한 지 좀 됐다.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번번히 기회를 놓쳤다. 드디어 어제 좀 일찍 퇴근한 남편과 영화 <다음 소희>를 보러 갔다. 최근에 읽은 《김용균, 김용균들》과도 맥락이 통하는 이야기라 꼭 보고 싶었던 영화다. 《전태일 평전》을 읽는 중이라 그런지 젊은이들의 노동 현실에 더욱 관심이 가는 요즘이다. 20대 초반의 두 아들을 둔 엄마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은 남편도 기꺼이 함께 보겠다고 응해줘서 우리 부부에게는 뜻깊은 데이트 시간이 되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 남편이 티슈를 건넸다. 내가 울 것을 예상했나 보다. 


  공부를 아주 잘 하는 편이 아닌 두 아들을 키우면서 마이스터 고등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학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자신의 적성을 살리고 일찍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해서 취업하는 게 성적에 맞춰 적성에도 맞지 않는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경제적으로 일찍 자립할 수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나중에라도 공부 더 하고 싶으면 그때 대학을 갈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잘 모르고, 알아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두 아들은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을 목표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러니 나는 더더욱 특성화 고등학교에 대해 알 길이 없었다.  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어떻게 학교가 저럴 수가 있는지 의아했다. 고등학생 아이들을 현장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일자리에나 내몰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다. 물론 모든 학교의 학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학교나 교육청, 고용 노동부 등 어디에서고 아이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소희 같은 아이는 다음에 또 다음에도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과 한숨이 섞여 나왔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검색해보니 그 문제점이 다양했다. 물론 모든 학교가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업 현장과 산업 현장 간의 차이
·학교들의 수준 차이
·교단의 고령화
·부족한 예산
·노동착취
·진로강요


 나는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알게되었지만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등으로 개선이 되지 않는 거겠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과 현장 실습하는 아이들의 고통은 연결되어 있다. 기업은 싼 노동을 원하고 노동자는 고용주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혹사한다. 할 수 없는 분량의 일을 주고 하지 못하면 질책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일하는 곳인데 숫자로만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실적을 얼마나 올렸는지만 중요하고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사원인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같다. 소희가 죽으면 다음 소희로 대체하고 다음 소희가 그만두면 그 다음 소희가 들어오면 되니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기업은 어떻게 하면 싸게 잘 이용해먹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는 메아리처럼 공허하다.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한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지독히 견고한 구조다. 경제적으로 힘든 부모는 일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지금 힘든 게 뭔지 묻지 않고 '별일 없겠지, 다 이러고 사는 건데 뭐' 하며 하루하루 견뎌내듯 살아간다. 외로운 아이들은 고민을 이야기할 곳이 없다. 친구들을 만나면 웃고 떠들고 불평 불만을 늘어놓지만 진짜 심각한 문제를 털어놓으려면 믿을 만한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학교가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선생님이 안전망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돈 많은 집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아니면 어디서든 찬밥 신세다. 사회가 힘없는 아이들을 지켜줘야 하는데 이익만 따져가며 방치한다. 어디 하나 믿을 만한 구석이 없으니 이 아이들을 어쩌나 싶다.

 

 나는 과연 믿을 만한 어른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두 아들이 힘들 때 주저없이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엄마인지,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를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은요... 선생님만 알고 계세요. 나 어떡하죠?' 하며 말을 걸 수 있는 선생님인지, 우리 사회에서 소희처럼 부당한 일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정의로운 어른인지 나를 돌아본다. 그런 엄마, 선생님, 어른이고 싶다. 꼭 그래야겠다. 

  24살 김용균의 죽음에 이어 18살 소희의 자살까지, 요즘 내가 알게된 사건들로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사회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서 내가 당장 어찌할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모른 척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싶다. 내 두 아들이 사회에 나가 즐겁게 일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기를 바란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다고 우리 아들들에게 세상이 다 이런 거라며 참고 견디라고, 그래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 엄마가 보호막이 되어주겠다고, 부당한 일은 견디지 말라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기 위해 함께 노력해보자고 말해줄 것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영화 <다음 소희>

 젊은이들의 안전한 일자리는

어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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