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진심, 열정
영화 <에어>는 군대에 있는, 영화 마니아 큰아들이 권한 영화다. 휴일 저녁에 남편, 재수생 아들과 함께 관람했다. 영화관이 집에서 좀 거리가 있고 늦은 시간대라 혹시 졸려서 집중이 안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맷 데이먼의 연기에 온전히 집중했다. 배우로만 알고 있었던 벤 애플렉이 이 영화의 감독이다. 나이키의 대표로 연기하며 맷 데이먼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감독이자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가 72년생 나와 동갑이다. <굿 윌 헌팅>(1998)에서 풋풋한 청년으로 나왔던 맷 데이먼이 70년 생이란다. 나와 같은 50대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보니 친구의 건재함을 보는 듯 흐뭇하면서도 세월의 무상함에 헛헛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이키와 조던, 이 두 키워드만 알고 갔다. 영화 내용을 너무 자세히 알고가면 정해놓은 감상을 해야하는 것처럼 갑갑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별 정보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다. 필요하면 나중에 배경이나 궁금한 점을 찾아본다. 1984년만 해도 나이키는 아디다스와 컨버스에 밀리는 브랜드였단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1위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지만 그렇게되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전과 열정, 모험과 노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사람이든 회사든 성공 신화는 좀 식상하다. 나이키와 조던은 누가봐도 성공 신화에 어울리는 조건이라 너무 뻔한 전개가 아닐까 살짝 우려가 되었지만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날 믿어주는 사람
누구도 혼자 살 순 없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살면서 달콤한 성공만을 맛볼 수는 없지 않은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치기도 하고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그럴 때 위험을 무릅쓰며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은 해볼 만하고 세상은 그래서 살만해진다. 무모해보이는 소니(맷 데이먼)가 에어 조던을 탄생시키고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그를 믿어준 사람들 덕분이다.
영화를 보면서 올해 명절에는 오르다국어학원 원장님께 마음을 담은 선물과 감사 카드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며 비교적 안정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날 믿어주는 원장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40대만 해도 나 잘난 맛에 거들먹거리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며 50대가 되고나니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구나 싶다. 항상 내편이 되어준 남편과 건강하게 잘 자라준 두 아들, 그리고 나를 믿고 논술 수업의 전권을 맡겨주신 원장님과 수업 시간에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들, 그리고 나를 신뢰해주시는 학부모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진심은 통한다
진심의 힘을 믿는다. 2년 전 가을 지금의 학원에서 처음 논술 수업을 시작했을 때 학생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프렌차이즈도 아닌, 내가 만든 논술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한다는 게 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이 더 컸던 게 사실이다. 그때 힘이 됐던 일화가 있다. 나와 수업하던 초등 5학년 현준이가 논술 수업이 왜 그렇게 좋냐고 묻는 엄마에게 그러더란다. 논술 선생님은 수업에 진심이라고. 그 어머니도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분이라 자기 아이가 학원 선생님을 그렇게 표현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울컥했단다. 어린 아이지만 내 진심을 알아주는구나 싶어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내 수업에 마음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소니(맷 데이먼)는 농구와 나이키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 조던이 나이키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돈이나 명성으로 사람을 혹하게 할 수는 있지만 진심 앞에서는 그것들이 맥을 못 춘다. 소니의 진심을 조던의 엄마가 알아봤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한 그의 투지를 동료들이 믿고 응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언제나 귀하다. 겉으로만 화려하고 그럴 듯해 보이는 걸로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심만이 상대를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 영화 <에어>를 보면서 따뜻한 마음이 들었던 건 영화에서 그런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에 열정을 다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그 일이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즐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할 수도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일이 좋다.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책의 가치를 알리고 글 쓰기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바람직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영화 <에어>를 보며 내 옆에 앉아있는 우리 둘째아들의 미래를 상상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 운동 선수로 시작은 못했지만 스포츠 관련 학과 진학을 준비하며 재수 중이다. 우리 아들도 영화에 나오는 소니(맷 데이먼)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능력을 인정받으며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